정착생활의 시작

어떻게 기후 변화로 사람들이 새로운 생활방식을 찾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를 우리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불리는 곳에서 볼 수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상이집트에서 나일강을 따라 하이집트로 내려가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거쳐 북쪽으로는 터키 중부까지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거쳐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지역이다.

1. 정착 생활의 시작

나투프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레바논 근처에 있는 해안가에 정착했다. 바다에는 그들이 식량으로 쓸 물고기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더 올라가 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땅이 비옥하고 풀이 자랐다. 알고보니 그곳은 늘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원이 풍부했다. 

어떤 철에는 가젤 같은 야생 동물을 사냥하고, 어떤 철에는 작은 마을에 정착해서 살았다. 그들은 마을에서 진흙과 찰흙으로 둥근 오두막을 지어 일 년 내내 그곳에서 살거나 1년에 얼마 동안을 그곳에서 지냈다. 최근에 레바논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에서 나투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여러 곳 발견되어 발굴되었다.

그런데 자연이 변덕을 부렸다. 과학자들은 얼마 안 있어 그런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기온이 지난 8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꾸준히 올라가지 않고 느닷없이 뚝 떨어져 다시 빙하기가 찾아왔다. 5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세계의 대부분이 다시 꽁꽁 얼어버렸다. 갑자기 땅이 눈의 여왕의 사악한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 여왕의 주문이 약 1300년 동안 풀리지 않았다.

‘어린 드리아스기’로 불리는 이 사건은 약 1만2700년 전에 일어났다.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아는 것은 그린란드의 얼음 시추 시료에서 얻은 증거 덕분이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이용해 80만 년 전의 지구의 기온까지 추산해낸다.

지금 전문가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이 따뜻한 것은 멕시코 만류가 따뜻한 물을 유럽으로 실어 나르기 때문이며, 이 멕시코 만류는 아메리카 대륙의 북동 해안을 따라서 기류와 해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대서양을 가로지르도록 하는 염도가 높은 바닷물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 빙하에 갇혀 있던 담수가 흘러넘쳐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자 해수의 염도가 엄청나게 낮아져 멕시코 만류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거나 완전히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2. 곡식의 수확

이는 왜 몇 년도 안 되는 사이에 기온이 그렇게 쑥 내려갔다 올라갔는지도 설명해줄 것이다. 약 1300년 후에는 다시 많은 양의 담수가 빙하에 갇히면서 지구의 기온이 10년 만에 자그마치 5도나 올라갔다. 북해의 염도가 증가해 멕시코 만류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인류 역사상 그때까지 그렇게 급격한 기후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특히 유럽과 지중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 사냥터가 범람했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가뭄이 시작되어 그나마 남아 있던 울창하고 비옥한 삼림 지대가지 잡목이 우거진 메마른 땅으로 변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밀 같은 들풀이 나투프 사람들의 주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는데, 날씨가 뜨겁고 건조해지자 모두 시들어버렸다. 어떤 전문가들은 어쩌면 그래서 나투프 여자들이 실험 삼아 씨를 뿌리고, 땅을 미로가 보리, 호밀 같은 풀을 재배하기 좋게 일구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굶어죽을 상황에 처하자 여자들이 가장 크고 가장 달콤하고 가장 수확하기 좋은 씨를 골라서 저장해두었다가 다음해에 특별히 준비한 땅에 뿌렸다는 것이다. 나투프 여자들이 역사상 가장 먼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 같다. 나투프 사람들의 창의성은 현대 고고학자들이 곡물을 수확할 때 쓰는 곡괭이와 낫의 형태를 지닌 농기구를 발견함으로써 증명되었다. 

3. 동물 길들이기

고고학자들은 오늘날의 시리아에 있는 아부 후레이라라고 하는 나투프 사람들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을 공들여 면밀히 조사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을 보면 이곳에 가장 좋아 보이는 씨들만 골라서 뿌리는 방식으로 야생 곡물을 재배할 줄 아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식량이 되었던 들풀이 죽어버리자 살기 위해 가장 쉽게 자라는 씨를 뿌려 기르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씨가 발견된 곳을 보면 그들은 자연히 습기가 모이는 비탈에 씨를 뿌린 것 같다. 그러고는 잡초와 떨기나무가 접근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산비탈의 논다랑이와 비탈을 적극적으로 관리해 농작물이 최대한 좋은 결실을 맺도록 했다.

나투푸 사람들은 처음으로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얄려진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들은 고분고분한 늑대를 선택함으로서 마침내 집에서 기르는 개로 길들였다. 개는 가까운 지역에 사는 다른 동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야생 양과 염소, 멧돼지, 말을 사냥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개의 도움으로 이런 야생 동물을 길들여 한 곳에 놓고 길러 고기과 젖을 얻기가 비교적 쉬웠다.

왜 어떤 동물들은 애완동물이 되거나 농장에서 평화롭게 사는데 어떤 동물들은 그렇지 않을까? 최근에 이런 동물들의 역사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야생 동물이 가축으로 길들여지려면 최소한 세 가지 특성이 있어야 함을 발견했다. 

그것은 무리를 지어 살아야 하고, 체계적 사회 구조가 있는 공동체에서 살아야 하고, 다른 종의 동물들과 풀을 뜯어먹는 영역을 공유해도 괜찮아야 한다는 것이다.

4. 또다른 선택

늑대와 야생 양, 야생 염소가 인간에게 선택적으로 번식되고 8천 년 전에는 여기에 돼지와 소가 합류했고, 약 6천 년 전에는 유럽과 극동을 잇는 유라시아 스텝에 있는 야생 풀밭과 숲에서 돌아다니던 당나귀와 말이 합류했다.

나투프 사람들은 개를 사랑했다. 사람과 개가 나란히 묻힌 무덤도 발견되었다. 나투프 사람들의 무덤들은 이들이 가축을 길럿음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를 보여준다. 높은 유아 사망률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나투프 사람들의 무덤 가운데 3분의 1에는 여덟 살 미만의 아이들의 골격이 들어 있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의 선택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자연히 이런 새로운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은 쉽게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보다 죽는 일이 많았다. 그 결과 세대가 지나면서 가축과 가까이 산 사람들은 가축이 퍼뜨리는 병에 대한 면역력이 강해졌다.

약 1만1400년 전에 어린 드리아스기가 끝나자 기후가 예전처럼 다시 온화해져 불과 몇 년만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 사람들은 온갖 초목이 자랄 수 있게 비가 충분히 오는 풍요로운 땅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예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형태로 생존에 필요한 강력한 무기를 지니게 되었다. 가축과 씨는 그들에게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5. 새로운 생활방식

기원전 9천 년경부터 새로운 영원한 정주민이 중동 전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신석기 시대‘ 농사꾼들은 이제 훨씬 큰 공동체에서 살 수 있었다. 농사를 지을 줄 알게 되고 가축을 길러 고기와 젖도 먹고 끄는 힘으로도 쓸 수 있게 되면서 창고에 먹을 것이 그득하게 쌓인 덕분이었다. 사냥과 채집이 일부에게는 과거의 전통이 되고 있었다.

예리코는 가장 오래된 신석기 시대 도시 가운데 하나다. 면적이 그 전에 나투프 사람들이 살았던 곳보다 여덟 배나 크고, 최초로 성벽을 두른 도시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발굴 결과 둥근 집들이 발견되었는데, 방이 하나 이상 있는 집들이 많았고, 요리와 빨래같은 것을 하는 개방된 공간도 있었다

이런 초기 건물들은 돌로 토대를 놓았고, 바닥에 자갈을 깔았으며, 진흙과 찰흙으로 만든 별돌로 벽돌로 벽을 쌓았다. 발견된 곳마다 돌이나 진흙으로 지어 식량과 곡물을 쌓아둔 창고가 있었는데, 이는 적어도 이 사람들에게는 돌아다니며 살던 날들이 이제는 오래된 과거였다는 분명한 증거다.

이들은 필요에 의해 자연을 자기들에게 맞게 바꿀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새로운 생활방식이 탄생했다.

6. 문화적 접촉

예리코의 서편에는 성벽이 쌓여 있었다. 한때는 이들을 시기하는 이웃들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으리라고 믿었으나, 그것은 여전히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던 바다에서 느닷없이 밀려오는 진흙과 바닷물을 막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데 새롭게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이 사람들이 떠오르는 다른 문화들과 접촉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흑요석은 화산의 용암이 급격히 식을 때 생기는 일종의 천연 유리다. 가장 날카롭고 가장 효과적인 화살촉을 만들 수 있어 사람들은 이것을 많이 찾았다.

터키 중앙에 있는 바위산에서는 흑요석이 자연히 생성되지만, 이것은 수백 마일 떨어진 신석기 시대의 예리코에서도 발견되었고, 이로부터 우리는 장거리 교역로가 이미 잘 닦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왜 이미 먹기 좋고 수확하기 좋게 만든 귀중한 씨앗을, 1천 년 이상 특별한 선택과 힘든 노동이 낳은 산물을 유리와 교환하지 않았겠는가? 한 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자 농사를 짓고 씨를 공급하고 가축을 기르는 방법이 유럽과 중동은 물론 그 너머까지 금세 널리 퍼졌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농경의 시작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빙기가 찾아온 뒤에 인간이 어떻게 여러 가지 생존 기법을 실험하다가 역사상 최초로 진화 과정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도록 시도하게 되었을까?

1. 인위적 선택

인류가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육식동물에 대한 무차별 살육이 인간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에 끼친 영향이 아직 다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인간의 운명과 지구의 생태계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엮을 또 하나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약 1만2천 년 전부터 인류의 역사는 자연의 진화 과정을 제어해 자신의 요구에 맞게 바꾸려는 최초의 시도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먼저 동물을 인위적으로 번식시키고 특수한 식물, 즉 식량 작물을 집중적으로 기르는 농사의 시작으로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수십억 년 동안 지구의 생물을 변화시켜, 단순한 단세포 미생물로부터 열매를 맺는 버섯에서 뛰는 쥐까지, 끈적끈적한 민달팽이에서 독을 분비하는 독사까지 온갖 다양한 생물을 만들어냈다. 이런 변화는 세대 간의 유전적 차이에서 왔고, 이런 유전적 차이는 끊임없이 변하는 지구의 많은 환경에서 종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그런데 약 1만2천 년 전에 인간이 처음으로 땅을 일구고 야생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과정을 중간에 가로챘다. 사람들이 오늘날 ‘인위적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이 야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표본을 선택해 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선택해서 기르고 번식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2. 정착생활

인위적 선택은 사람들이 정착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필요한 식량을 모두 한 곳에서 재배할 수 있어 한 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마을에서 살며 최초로 집을 짓기 시작했고, 마을이 커져 작은 도시가 되고, 작은 도시가 다시 커져 큰 도시가 되고, 큰 도시들이 모여 국가가 되고, 국가들이 모여 하나의 문명을 이루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정주민 생활양식이 탄생했고, 그러자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 지구의 풍경이 식량 생산에 맞게 재편성되었고, 현대의 질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대의 질병은 거의 모두 인간이 가축과 가가이 살면서 생겼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식량 생산과 관련이 없는 직업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식량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과거에 수렵채집을 했을 때보다 생산성이 열 배 이상 올라갔다.

농사를 지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어 사람들은 자식도 더 많이 낳을 수 있었다. 식량을 창고에 쌓아둘 수 있어, 잘하면 한 해 걸러 한 번씩 출산을 해도 되었다. 마을이나 작은 도시에 사니 주변에 어린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많아 가족의 규모를 늘려도 되었다.

3. 사회의 변화

마을과 소도시의 인구가 늘자 농사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장인이 될 수 있었다.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도자기와 보석, 옷 같은 것을 만들어주는 숙련된 노동자가 된 것이다. 이들은 유연한 소재로 바퀴와 마차, 갑옷 같은 것을 만드는 새로운 기술도 탐구할 수 있었고, 땅에서 구리와 청동, 철의 형태로 그런 소재를 추출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상인이 나타나 장인들이 만든 제품과 잉여 농산물을 사고팔기 시작했다. 교역은 곧 여행과 배, 글쓰기, 셈하기, 화폐를 뜻했다. 식량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직업으로, 마을이나 소도시가 신의 뜻에 따라 잘 유지되고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들고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역할도 생겼다. 이런 초기의 사제와 성자들은 세계의 주요 종교가 탄생하는 데 일조했다.

정착민의 수가 늘어나자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통제가 필요했다. 세계 최초의 황제가 나타났고, 이들과 더불어 세금을 걷고 법을 공표하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법을 집행하는 일을 하는 관료귀족도 나타났다. 

왕은 군대로 자신의 권력을 보호할 여유도 있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른 덕분에 이제는 창고에 쌓인 곡식으로 수많은 병력을 먹여살리고, 길들인 동물은 그 젖을 짜서 먹거나 잡아서 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짐수레를 끌거나 군인들을 전쟁터로 실어 나르는 데 쓸 수도 있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전쟁을 감행해 이런 새로운 도시 문화를 찬미하고 확장할 수도 있었다. 이런 도시 문화는 곧 고대 세계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4. 사냥과 농사의 공존

그런데 어떻게, 왜, 어디서 이렇게 갑자기 농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을까? 한가지는 분명하다. 석기 시대에 어떤 똑똑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농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기르는 것이 인간에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일을 한 곳에서 한 번에 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어떤 역사책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마치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말한다. 그것이 인류에게나 지구 전체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 탓이다. 그래서 그것을 신석기 시대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서서히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99.9퍼센트가 농업과 축산업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 살지만 말이다.

인간의 생활방식이 돌아다니며 수렵과 채집을 하는 생활방식에서 정착해서 살며 농부들이 도시 생활자들을 부양하는 생활방식으로 바뀐 것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만큼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원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때는 사람들이 반이라도 수확을 해서 그들의 첫 번째 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야생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냥감도 많고 한 번 잘 잡으면 식구들이 일주일 내내 먹을 수도 있었던 사냥꾼의 편한 삶에 비하면 농사꾼의 삶은 힘들고 고되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바로 사냥을 해서 먹는 전통적 생활방식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5. 초기 농사

빵 한덩어리를 구워 먹으려고 해도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 고된 일들을 견뎌내야 했다. 인간이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보리와 밀, 호밀 같은 곡식의 낱알을 일일이 풀 더미 속에서 손으로 주워야 했고, 가장 원시적인 조리기구인 절구와 공이를 이용해 낟알을 빻아야 했다.

게다가 그런 낟알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 자란 것들이지 몇 세대에 걸친 인위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었다. 좋은 이유에서 자연은 그것들을 되도록 가볍게 만들었고, 바람에 실려 사방으로 멀리 날아가서 싹을 틔우고 번식할 수 있도록 줄기에도 느슨하게 붙어 있도록 했다.

그러나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하듯이, 줄기에서 쉽게 떨어지는 낟알은 식구의 빵을 책임지는 사람들에게는 악몽이다. 그런데 빵을 만들려면 이런 종류의 밀이 아주 많이 필요하고, 그것도 여기저기에 우수수 떨어진 낟알들을 허리가 휘도록 일일이 주워야 한다.

예측할 수 없고 달갑지 않으며 힘들기만 한 일, 이것이 1만2천 년 전에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 초기 농부들의 골격은 그것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발가락은 비틀어지고, 무릎은 구부러져서 관절염에 걸려 있으며, 힘들게 낟알을 돌판 사이에 넣어 빻느라 허리가 완전히 기형이 된 경우도 있다.

야생 동물을 달래 원하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일은 더욱 쉽지 않았다. 수천 년에 걸친 유전자 조작은 달콤하고 풍부하며 수확하기 좋은 농작물과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순한 가축을 낳았지만, 그때는 완전히 고투의 연속이었다.

6. 기후의 변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강제다. 1만2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오늘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것은 앞으로도 몇 세대 동안은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기후 변화였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는 2만2천 년 전에 가장 추웠다. 그때는 많은 물이 북유럽의 많은 부분을 덮은 빙상에 갇혀 해수면이 오늘날보다 거의 130미터나 낮았다. 그때는 영국 해협도 없고 흑해도 없고 지중해도 낮은 평지였다. 지금 베링 해협이 있는 곳에는 베링지아라는 땅이 얼음에 덮인 툰드라 지대로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에 뻗어 있어, 인간과 동물이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가는 중요한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양으로 나아가는 뱃길에 된 홍해가 그냥 평평한 육로였다. 그런데 수천 년에 걸쳐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변이 올라가 전 세계에서 대대적인 범람이 일어났다.

해빙기에 지구의 기온이 섭씨 6도 이상 올라갔고, 아마 이것은 지구의 자전에서 일어나는 주기적 변화 탓이었을 것이다. 해빙기는 약 1만4천 년 전에 절정에 이르렀다. 그때는 거대한 빙붕이 무너져 바닷물에 녹으면서 해수면이 500년 만에 25미터나 올라갔다. 

약 8천 년 전에는 해빙기가 대부분 끝나 해수면이 거의 현재와 같은 수준이 되었다. 영국 해협은 마지막으로 범람한 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이로 인해 영국은 10만 년 남짓 만에 처음으로 유럽대륙과 분리되었다.

이런 자연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생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인류에게는 그로 인해 전통적 사냥터였던 많은 곳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렸다. 강우 패턴과 날씨 체계가 급속히 변하면서 한때는 사냥하고 채집하기에 좋은 풍요로운 숲이었던 지역들이 메마른 사막으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