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전

나투프 사람들이 식물과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한 뒤에 큰 강 유역에서 거대한 인류 문명이 나타났다. 바빌론의 태양신 샤마시가 함무라비 왕에게 법을 구술한다. 282개의 법조문으로 이루어진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론 시내 중심에 세운 2.25미터의 석판에 새겨져 있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1. 기록의 시작

니네베 유적지에서 발굴된 가장 유명한 점토판은 길가메시라는 수메르의 초기 왕의 모험을 이야기해주는 점토판일 것이다. 길가메시는 수메르에 생긴 최초의 도시 가운데 하나인 우루크라는 도시를 다스렸는데, 우루크는 현재의 이라크 남부에서 유프라테스 강 동안에 있었다.

우루크는 인구가 가장 많았을 때는 8만 명에 이르러,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길가메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려고 일련의 성벽을 두껍고 높게 쌓아올렸다. 최근에 독일 고고학자 팀이 발굴한 것을 보면 우루크에 살던 사람들은 성벽 안에 복잡하게 연결된 운하도 팠다. 우루크는 고대의 베네치아 같았고, 신에게 바친 일련의 신전이 있었다.

길가메시는 우루크의 다섯 번째 왕이었고, 기원전 2650년경에 다스렸다. 길가메시는 메소포타미아 사람 모두에게 큰 존경을 받는 인물로 일련의 신화와 전설은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행동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러나 처음에는 좋은 왕이 아니어서 신들이 온 몸에 털이 덮인 야수 같은 엔키두라는 사람을 만들어 길가메시와 싸우게 했지만, 사람들이 야생 동물을 길들일 줄 알게 되었듯이 길가메시도 엔키두를 길들일 수 있었고, 두 사람은 곧 좋은 친구가 되어 함께 많은 모험을 했다. 

엔키두가 죽자 길가메시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고, 영원히 살고 싶지만 자신도 결국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야기가 끝날 때는 길가메시가 인상적인 성벽과 멋진 신전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 전설의 일부는 이후 문명에서 발견되는 이야기들에도 나와, 언어와 문자뿐만 아니라 생각과 이야기도 널리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수천 년 동안 대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 글을 쓰는 기술이 생기자 기록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 종교의 시작

점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이야기들은 수메르 사람들의 세계관에 관해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예를 들면 그것들은 종교적 믿음이 존재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주는 문자로 된 증거를 제공한다.

길가메시는 인간은 모두 신의 종일 뿐임을 깨닫는다. 신은 사람들에게 왜 홍수와 가뭄, 침입 같은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모든 인간 문명의 공통된 특징은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거나 자신의 힘을 증강시키기 위해 자연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수메르 사람들은 도시에 신전을 지어 신전마다 각각 다른 신에게 바침으로써 그러려고 했다. 신들이 사랑에서부터 전쟁과 풍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신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표시하려고 포도주나 기름 항아리 두껑에 점토로 봉인한 것에서도 고대 수메르인의 종교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 봉인이 신비한 힘이 있어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고 믿었고, 그것을 신의 그림으로 장식해 신의 보호까지 받으려고 했다.

수메르 사람들은 해마다 새해 첫날에 신들이 만나 그 해에 어떤 운명적인 일들이 일어날지를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결정은 가뭄과 홍수 같은 온갖 형태의 재앙도 가져왔지만 풍작과 군사적 승리 같은 예기치 못한 행운도 가져다 주었다.

3. 문명화의 시작

수메르 사람들은 하늘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지구라트라는 탑을 세웠다. 지구라트는 햇볕에 구운 점토 벽돌로 지은 계단식 피라미드였다. 탑 꼭대기는 모두 평평했고, 여기에 수메르 사람들은 사원이나 신전을 지어 신에게 바쳤다. 지구라트는 신이 사는 곳이라고 믿어 그 안에는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32개가량이 남아 있으며, 대부분이 이라크에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바빌론이라는 도시에 있었고, 마르두크라는 신에게 바친 것이었는데,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도 원래 여기서 착안되었을지도 모른다.

수메르 사람들은 놀라운 수학자들이기도 했다. 레이어드가 발견한 점토판 중에는 이들이 복합한 산술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으며, 이들은 수직으로 내려 그은 선과 V자 형태를 여러 가지로 조합해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나타냈다.

수메르 사람들은 60을 기반으로 한 수학 체계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60을 나누는 방식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수메르 사람들은 오늘날의 숫자처럼 왼쪽에 있는 숫자가 그 다음에 오는 숫자보다 높은 값을 갖는 ‘진정한 자릿수’ 체계도 사용했다.

이들은 수학과 천문학에서도 천재적이었지만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솜씨도 아주 뛰어났다. 학자들은 이들이 바퀴를 발명했다고 믿는다. 얼마 뒤 수레와 마차도 발명되었지만, 이들이 발명한 바퀴는 수레나 마차에 쓰는 바퀴가 아니라 항아리를 만들 때 쓰는 돌림판이었다. 

그러나 바퀴가 물건을 실어 나르는 장치로 개조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만들어진 수레를 끄는 데는 나귀가 쓰였고, 나중에 통 바퀴가 바퀴살이 있는 바퀴로 대체되었다. 이 바퀴는 훨씬 많은 무게를 실어 나를 수 있어, 마차를 끌기에 안성맞춤이었다.

4. 교역의 시작

그러나 이때는 도로가 거의 없어 수레로 여행하는 것이 배로 가는 것만큼 편리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들의 정착지를 바다와 이어주는 강을 이용했다. 수메르 사람들은 적어도 세 가지 유형의 배를 설계했다. 

어떤 배들은 동물 가죽과 갈대로 만들었고, 어떤 배들은 털을 꼬아서 이어붙이고 역청을 발라 방수를 하고 나무로 노를 만들어 저었다. 배는 먼 곳에서 이들처럼 정착하기 시작해 도시와 문명을 이룬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 교역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바퀴에서 문자까지 수메르 사람들의 과학기술은 머지않아 배로 갈 수 있는 세계 전체로 퍼졌다.

수메르의 장인들은 금과 은, 구리 같은 부드러운 금속으로 귀중한 물건을 만들었다. 1930년대에 영국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는 우르의 왕실 공동묘지에서 1800기가 넘는 무덤을 발굴했다. 한 무덤에서는 어떤 고대의 보물보다도 화려하고 값비싼 보물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그것은 우르의 여왕 푸아비의 무덤으로, 기원전 2500년경의 것이었다. 무덤에는 여왕과 함께 병사 다섯 명과 시녀 스물세 명이 묻혀 있었다. 이들은 내세에서도 계속 여왕의 시중을 들도록 독살당한 사람들이었다. 

울리는 이들과 함께 정말 아름답고 멋진 보물더미를 발견했는데, 금박으로 만든 머리 장식과 금에 덮인 수염 달린 황소 머리가 있는 화려한 리라, 금으로 만든 식기류, 은으로 만든 사자 머리로 장식된 마차, 많은 금반지와 목걸이, 팔찌 등이었다. 

5. 함무라비 법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생긴 우루크와 우르 같은 수메르의 도시들은 끊임없이 서로 전쟁을 했다. 누가 죽은 사람의 땅과 재산을 물려받아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아 싸움이 자주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사냥과 채집을 하는 사회에는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고, 아무도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집을 짓고 자기 논에 물을 대려고 관개 용수로를 팠다. 따라서, 누가 죽은 사람의 땅과 재산을 물려받아야 하는지가 아주 큰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분쟁은 가족간의 싸움이나 집단간 싸움으로 비화했고, 그것이 치열해지면 도시와 도시의 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자의 발명으로 강력한 통치자는 문서로 된 일련의 칙령과 법령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었고, 그것을 처벌의 위협으로 뒷받침했다. 문자가 발명된 덕분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폭력을 쓰지 않고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바빌론은 기원전 1900년경에 득세하기 시작했다. 함무라비는 기원전 1810년부터 1750년까지 살았고, 그가 제정한 법이 바빌론을 탈바꿈시키고 안정시킨 덕분에 바빌론은 메소코타미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가 되었다. 함무라비는 자신이 만든 법을 돌에 새겨 바꿀 수 없도록 했다.

함무라비의 법은 다른 문명에서도 모방해, 오늘 날에도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정의의 토대가 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6. 문명의 확장

만일 아무도 법조문의 읽지 못한다면 법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법에 의한 통치를 하려면 교육에 더욱 힘써야 했다. 도시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배우도록 했다. 

모든 인간 문명처럼 아주 기발하고 독창적이었던 수메르 사람들도 영원히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의 쇠퇴와 몰락을 가져온 것은 전쟁과 침입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붙박고 살다가 수대에 걸쳐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농사를 짓자 기름졌던 땅이 갈수록 황폐해졌다. 

그들의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였다. 막강한 아시리아 왕 사르곤 대제는 아카드를 중심으로 세계 최초의 제국 가운데 하나를 세웠다. 유프라테스 강 어귀에서 수백 마일 상류에 자리 잡은 아카드는 아직 땅이 비옥하고 기름졌다. 수메르 남부에 있는 도시들이 쇠락해 사르곤에게 정복당하면서 사르곤의 영토는 더 거대해졌다. 

고대 중동 사람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빙하기가 끝나고 오랫동안 습한 날씨가 계속되었던 시기가 끝나 그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졌다. 땅이 메말라갔고 우리가 아는 사막으로 변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수메르의 도시들이 거의 모두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문자 체계를 발전시킨 수메르 문명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아는 기록된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지식을 이부분에서 저 부분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착오 없이 전할 수 있었다. 문자는 인간이 처음 인위적 세계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데 이바지한 가장 강력한 도구들 가운데 하나였다. 

문자의 발견

글을 쓰는 기술이 어떻게 상인과 통치자, 장인, 농부, 사제가 최초로 인간 문명을 일군, ‘역사’로 알려진 시대를 가져왔을까?

1. 기록의 시작

역사시대와 선사시대의 차이는 한마디로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글을 씀으로써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기록할 수 있었다. 다른 세대에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이른바 ‘기록된 역사’라는 것이 시작되었고, 그 전의 모든 것을 우리는 ‘선사시대‘라고 부른다.

물론 글을 쓰기 전에도 이미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졋다. 때로 글로 써서 남기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정확하게 전달되기 힘들어 환상이나 신화로 둔갑하곤 한다.

이야기가 제대로 분석되고 정확하게 해석되도록 하려면 글로 써서 남겨야 하고, 그래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록된’ 역사는 처음 글을 쓰면서 시작되었고, 그런 일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문명들에서 약 5천 년 전에 일어났다. 

아마 문자가 없었다면 인간의 문명과 제국이 살아남기는커녕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자 덕분에 통치자들은 멀리서도 지워지지 않도록 새긴 칙병과 법, 군령으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2.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는 오늘날의 이라크 중심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멀리 페르시아 만까지 뻗어 있었으며, 페르시아 만에서 인도양과 연결되었다. 수메르는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새로운 욕구가 인위적 세계를 건설하는 쪽으로 확장되어 처음으로 도시와 국가가 나타난 지역들 가운데 하나다. 

수메르는 초기에 정착한 인간 공동체가 살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1만 년 전에는 해수면이 낮았던 지점에서 거의 130미터나 올라가 세계적으로 이 지역의 기후가 습해진 덕분에 지금보다 농작물 기르기가 훨씬 좋았다. 기온이 올라가고 강우량이 줄어 중동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래투성이의 불모지가 되기 시작한 것은 약 5천 년 전부터다.

습한 기후는 겨울에도 비가 와야 하는 밀과 보리, 포도 같은 농작물을 기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이 지역의 산비탈과 산허리에서는 가축으로 길들이기에 딱 좋은 양과 염소, 소 같은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동물들은 식량은 물론, 쟁기와 수레를 끄는 힘으로도 쓰고, 옷과 술.기름 등을 넣는 가죽 주머니, 가죽 제품을 만드는 재료로도 쓸 수 있었다.

고대에 최초로 수메르 도시가 나타난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에 인간이 만든 관개용수로와 배수로, 저수지, 댐 같은 시설을 통해 근처에 있는 땅에 물을 공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람들은 일부러 논밭에 강물이 범람하게 해, 자기들이 인위적으로 선택한 농작물이 풍작을 이루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 수 있었다. 

3. 문명의 발달

중동에서는 수메르 외에도 두 개의 고대 문명이 큰 강 유역에서 발생했다. 하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일 강 유역에서 발생했고, 하나는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 유역에서 발생했다. 

글자는 초기 인간 문명이 얼마나 발달된 문명이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다.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는 장사꾼이었고 또한 일부는 교역을 해도 좋을 만한 것을 만드는 장인이었다는 말이다. 

문자 언어는 식량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익히고 사람들 사이에 일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문명의 전형적 특징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식량을 채집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어떤 사람들은 장인의 솜씨나 장사하는 솜씨를 발휘하는 문명 말이다.

4. 고대 문자의 발견

1845년 페르시아에서 이상하게 생긴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빽빽이 새겨져 있는 석판에 덮인 고대 궁전의 성벽이 발견됐다. 이것은 오래된 낙서 같은 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단순한 왕궁이 아니었다. 몇 차례에 걸친 발굴 끝에 그곳에서 궁전 두 채와 큰 왕실 도서관이 발굴되었고, 알고 보니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니네베라는 고대 도시의 잔해였다. 

도서관은 기원전 627년에 죽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이 지은 것이었다. 위대한 왕이었던 아슈르바니팔은 학자이자 열렬한 수집가였다. 그 시대의 다른 왕들과 달리 아슈르바니팔은 읽고 쓸 줄 알았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레이어드와 그의 팀은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점토판을 무려 2만 점이나 발굴했다. 그 중에는 왕의 명단과 역사, 종교적인 글도 있고, 수학과 천문학 논문, 계약서, 법률 문서, 칙령과 칙서도 있었다. 이것들은 고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했고, 언제 어디서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고 그것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물론 이 귀중한 점토판으로부터 유익한 정보를 얻으려면 먼저 점토판에 있는 텍스트를 읽는 법을 알아내야 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레이어드와 그의 팀이 니네베에서 점토판을 발굴하고 있을 즈음에 페르시아에서 복무하던 한 영국군 장교가 또 하나의 놀라운 발견을 했다. 설형문자 읽는 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발견이었다.

5. 고대 문자의 해석

현재 영국박물관에 있는 로제타석 1799년에 이집트에서 나폴레옹 군대가 발견한 유명한 돌이다. 여기에는 같은 구절이 세 가지 언어로 쓰여 있는데, 그 가운데 둘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이고 하나는 고대 그리스어다. 

1822년에 프랑스 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로제타석에 새겨진 문자를 해독했고, 이로써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헨리 롤린슨이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 지대에 있는 자그로스 산맥의 작은 산에서 발견한 것도 그것들 못지않게 놀라운 것이었다. 이라크의 바빌론에서 뻗어나온 고대의 길을 따라 늘어선 절벽 위에서 그는 바위에 새겨진 일련의 조각상을 발견했고, 그 조각상마다 밑에는 어떤 구절이 쓰여 있었다.

베히스툰 비문이라고 하는 이 조각들은 기원전 522년부터 485년까지 이 지역을 다스린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로제타석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도 세 가지 언어로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100미터 높이의 절벽에 있어 롤린슨의 발견 전에는 아무도 절벽에 새겨진 것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1835년에 롤린슨은 절벽에 올라가 탁본을 떴다. 그는 텍스트의 첫머리는 페르시아 왕의 명단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있는 명단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것을 단서로 삼아 롤린슨은 고대 설형문자로 쓴 글을 읽는 법을 알아냈고, 그의 노력 덕분에 그후 전문가들은 레이어드가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귀중한 점토판에 쓰여 있는 것들도 대부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