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어떻게 한 문명이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고 그 깨달음을 전파하려고 했을까?

1. 생물과 지구의 협력

약 4천만 년 전부터 인도 대륙판이 아시아 대륙판의 남쪽 면과 충돌해 생긴 산맥이 지난 몇 천 년 동안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려고 한 이야기나 그동안 인간들 사이에 벌어진 일들과 무관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히말라야 산맥은 그것에 대해 대답해줄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웅장한 산맥의 어마어마한 높이가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지나면서 차가워져 거대한 계절풍이 형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기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수십 억 톤 빗물에 녹아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갔고, 바다 속 생물들은 그것을 세포를 만드는 재료로 썼다. 

그리고 이것들이 죽으면 탄소가 풍부한 껍질과 시체가 해저로 떨어져 지구의 진흙 속에 깊이 파묻혔다. 대기 속 이산화탄소의 양은 이렇게 자연의 힘과 생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조절되었고, 이로써 갈수록 뜨거워지는 태양 앞에서도 지구의 기온은 시원하게 유지되었다.

어쩌면 생물과 지구의 이런 오랜 협력 관계가 이 거대한 산맥의 기슭 너머에서 한 인간 사회가 약 2천 년 동안 자연과 아주 독특한 관계를 형성한 것을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2. 인도 갠지스 강

히말라야 산맥은 분명 우리가 지금 인도라고 부르는 곳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던 사람들을 중앙집권화하고 정복하고 병합하려는 중국의 군사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서쪽에서는 히말라야 산맥의 방벽 효과가 감소한 탓에, 그곳 사람들은 걷거나 말을 타거나 마차로 고개를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북쪽에서 몇 차례나 침입자들이 밀려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마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에 살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거기서 메소포타미아를 가로질러 인도북부에 있는 갠지스 강 유역으로 밀려 들어왔고, 그들을 막은 것은 하늘 높이 치솟은 히말라야 산맥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이 침략의 역사를 꿰맞추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고고학적 유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증거는 대부분 문헌에 있는 것이다.

베다라고 하는 경전은 원래 중동에서 생긴 산스크리트어로 쓰였다. 베다는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해준다. 이 책은 브라만이라고 하는 승려들에게 신에게 희생제를 지내는 법을 가르치는 용도로 쓰였다. 베다에는 기원전 1700년경부터 1100년경까지의 생활이 기술되어 있다. 베다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기원전 4000년경에 쓰였다고 믿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말이다.

베다는 이 초기 침략자들이 말과 바퀴, 금속의 형태로 가져온 도구들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말해주고, 귀족들이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전장을 질주하며 서로 일제히 활을 쏘아 대결하는 이야기도 해준다. 

베다에는 갠지스 강의 밀림을 개척할 때 쓰는 도구들의 용도도 기술되어 있다. 갠지스 강 유역은 정착하기 좋은 곳이었다. 많은 비는 채소를 기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벼농사가 잘 되었고, 그렇게 수확한 쌀로 군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3. 마하바라타

이 인도의 고대 경전을 일부만 피상적으로 읽으면 이 사람들의 운명도 북쪽과 동쪽, 서쪽에서 부상하고 있던 사회들의 운명만큼이나 폭력적이었을 거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고대 인도의 종교인 힌두교의 핵심에는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시들 가운데 하나인 마하바라타가 있다. 이것은 고대에 쓰여진 모든 시 가운데 가장 긴 서사시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의 트로이 이야기보다 훨씬 길어, 7만4천 개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고, 쓰인 단어가 180만 개가 넘는다. 

마하바라타는 쿠루 왕국의 왕권을 놓고 두 갈래로 갈라진 왕가의 자손들인 카우바라라 형제들과 판다바 형제들이 싸우는 서사시적 이야기를 해준다.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 일컬어지는 18일간의 쿠룩세트라 전투에서 절정에 이르고, 여기서 결국 판다바 형제들이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마하바라타에서 가장 신성한 부분으로, 아마도 기원전 550년경에 덧붙여진 것으로 생각되는 이야기에서 판다바 형제들의 지도자인 아르주나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 아르주나의 전차를 모는 전사가 된 크리슈나와 논쟁을 벌인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아르주나가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급히 크리슈나의 조언을 구한다. 그는 전쟁을 하면 자신의 가족들을 죽여야 하는데 그들은 과거에 충성을 맹세한 것 때문에 그와 싸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 아트만

바가바드기타, 또는 짧게 기타로 알려진 이 부분에서 크리슈나는 지금도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이들이 자연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신비로운 철학을 드러낸다

그는 아르주나에게 전쟁을 피할 수는 없지만 전쟁에서 죽는 사람들을 애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아트만이라고 하는 자아의 영혼은 파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로 태울 수도 없고 물로 적실 수도 없으며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다. 크리슈나는 이 자아는 사람이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이동한다고 말한다.

윤회는 힌두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해주는 핵심적인 믿음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저마다 아트만이라는 영혼이 있고, 이것은 모든 생명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편적 힘인 브라만의 일부다. 모든 개별자의 목표는 아트만을 해방해 브라만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아트만은 충분히 발전된 상태가 되어 깨달음을 얻고 영원히 해방될 때까지 동물이나 식물, 인간의 형태로 계속 윤회하도록 되어 있다.

아트만은 명상을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개별자가 어떻게 네 가지 유형의 요가를 이용해 마음에서 이기적 욕망을 떨쳐냄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준다.

크리슈나의 조언은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것이 처음 기록되고 2천 년도 더 지난 뒤에도 영국의 인도 지배에 맞서 비폭력 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의 평화주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기타가 자신에게는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 기타는 보편적 어머니다. 너무 실방스러운 일에 부딪혀 나 혼자서는 한 줄기 빛도 볼 수 없을 때, 나는 다시 바가바드기타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여기서 시구를 찾고 저기서 시구를 찾으면 어찌할 수 없는 비극 속에서도 나는 금방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내 삶은 외적인 비극으로 가득 찼지만, 그런 비극들이 내게 어떤 지울 수 없는 상처도 남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로지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 덕분이다.”

5. 카스트 제도

윤회설과 누구나 요가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키면 보편적 영혼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에나 현대에나 아주 인기 있고 호소력 있는 관념이었다. 그런 철학은 고대 인도 문명이 이 남아시아 대륙에 가끔씩 들이닥쳤던 이주와 침략, 정복의 물결을 달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분열을 초래하는 카스트 제도로 알려진 사회구조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와 전통이 모두 한 공간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인도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생활방식은 새로운 문화가 들어올 때마다 한데 뒤섞여 다양한 사회 집단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섞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케이크 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생각은 아마 처음에 말과 전차를 타고 청동 무기를 휘두르며 들이닥친 침략자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1500년경에 북쪽과 서쪽에서 몰려온 침략자들은 그들의 사제와 전쟁과 천둥의 신인 인드라 같은 많은 신에 대한 믿음도 함께 가져왔다. 

처음 카스트에는 네 계급밖에 없었다. 브라만은 기도를 하는 사제였고, 크샤트리아는 싸우는 군인, 비이샤는 일하는 농부와 장인, 마지막으로 이 계급구조에서 가장 밑에 있는 수드라온갖 ‘깨끗하지 않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노예 같은 사람들은 사회의 하수구에 처박혔고, ‘불가촉천민‘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계급들 사이의 뒤섞임은 한 번도 장려되지 않았고, 따라서 저마다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윤회설은 이 사람들에게 적어도 다음 생에서는 더 높은 계급의 사람들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어떤 희망을 주었다.

6. 아힘사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말할 수 없이 한층 복잡해졌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다. 인간 문명을 카스트로 조직하는 일이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계속 유지되는 것은 그것이 몇 세대에 걸쳐 이민은 받아들이면서도 기존의 문화가 자기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 희미해지거나 완전히 사라질 거라는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문화가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카스트가 생겨 이미 존재하는 카스트들의 위나 아래에 자리를 잡으면 기존의 관습이나 습관을 근본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시스템은 고대 문화와 신앙이 세계의 다른 지역들보다 인도에서 더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했고, 이는 힌두교가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종교인 것도 설명해준다.

자연에 폭력을 가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은 힌두교 사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우파니샤드는 고대 힌두교 경전을 모은 것으로, 기원전 500년경에 베다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주석서로 처음 쓰였다. 여기서 아힘사가 처음 언급된다. 이것은 많은 힌두교 신자들이 자연에 폭력을 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채식주의는 이러한 철학의 일환이며, 이런 이유로 인도는 오늘날에도 전체 인구의 40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다. 

고기를 먹는 힌두교 신자들도 소는 거의 먹지 않는다. 소는 모든 동물 가운데 마실 젖을 주고 쟁기를 끄는 힘을 제공하고 땅을 비옥하게 하는 비료를 주는 자연의 선물로서 높이 숭앙받기 때문이다. 힌두교 신자들에게는 소가 아낌없이 주는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고, 따라서 오늘날에도 인도의 거의 모든 주에서 소를 죽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