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 채집인

인간은 어떻게 자신이 지구에서 산 역사의 99퍼센트의 기간을 편히 머물 수 있는 집이나 직업, 사유재산도 없이 자연 상태에서 살았을까?

1. 공유사회

우리가 가진 증거 가운데 많은 것들은 이 석기 시대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말한다.약 1만 년 전까지는 오랫동안 사는 집이나 마을이 없지는 않았어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늘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남자들은 동물을 사냥하고 여자들은 자연 그대로 자란 열매를 땄다. 때로 여자들도 사냥하는 것을 도왔는데, 특히 도망가지 못하도록 빙 둘러서 포위할 필요가 있는 사슴 같은 동물을 잡을 때 그랬다.

늘 돌아다니는 방랑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실제로 소유할 게 거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들은 가진 것이라고는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밖에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동물 가죽이나 털가죽을 입었고, 날씨가 더워지면 거의 발가벗고 다녔다.

그러니 필요 없는 것을 무엇하러 가지고 다녔겠는가? 그들은 물을 넣은 호리병박같이 반드시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녔다. 그들은 또 사냥할 때 쓸 이나화살도 가지고 다니고, 죽은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불을 피울 때 쓸 부싯돌로 만든 도구도 가지고 다녔을 것이다.

그밖에는 거의 필요한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것이었다. 그들은 물건을 서로 공유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면 가지고 다닐 것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재산이 없었고, 누구도 땅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사유재산이니 여기서는 사냥하지 마시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땅은 오늘날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우리 모두의 것, 살아 있는 생물이면 누구나, 다시 말해 동물과 식물, 인간이 모두 공유해야 할 자원이었다.

2. 초기 예술

사람들은 호모 하빌리스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아니 그에 앞서 적어도 300만 년 전에 루시의 사람들인 호모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타났을 때부터 이런 자연 상태에서 살았다.

그들은 서로 사이좋게 살았고, 자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사냥하고, 피곤하면 자고, 땅에 열매와 고기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 지구가 다시 기운을 차릴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아주 예술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수렵채집인들은 우리가 아는 최초의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작품이 프랑스 남서부와 에스파냐 북부에 있는 선사시대의 동굴 속 깊은 곳에 지금도 남아있다. 이 수렵채집인들이 최초로 새긴 것들에서 인류 예술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아마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동굴 벽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은 1875년 어느 가을 날 아침 마리아 사우투올라라는 여덟 살 난 에스파냐 소녀가 그야말로 우연히 발견한 동굴 벽화일 것이다. 

이날 사우투울라는 아버지 마르셀리노와 함게 알타미라에 있는 그들의 집 근처에서 이상하게 생긴 동굴들을 탐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270미터나 되는 어두 침침한 동굴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사우투올라가 위를 쳐다보니 천장이 소처럼 생긴 것들을 그린 그림으로 덮여 있었다.

열정적인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사우투올라의 아버지는 이것들이 들소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고 더 많은 것을 알아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전문가 친구의 도움을 얻었고, 얼마 안 있어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고 선언했다.

3. 동굴 벽화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런 솜씨 좋은 그림이 그렇게 오래되었다는 것을, 그것이 그렇게 ‘원시적인’ 사람들의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벌컥 화를 내며 마르셀리노 사우투울라가 유명해지려고 누군가에게 돈을 주어 동굴에 그림을 그리게 했을 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르셀리노 사우투올라가 불명예스럽게 죽은 지 14년이 지난 1902년에야 다른 동굴에서 비슷한 그림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것들이 진품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현대의 연대 추정 기술에 따르면, 그것들은 거의 2만 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석기 시대 사람들은 정확히 무엇을 그렸고, 왜 그렸을까? 그들은 어떤 재료를 섰을까? 그들의 예술작품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들이 전시하려고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바르셀리노 사우투올라가 에스파냐에서 발견한 그림이나 프랑스 남부에 있는 유명한 라스코 동굴 벽화처럼 그것들 가운데 꽤 많은 것이 빛이라고는 거의 없는 굴 속 깊은 곳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역사가들이 샤민이라고 하는 고대의 성자들이 굴 속 깊이 들어가 마법 의식을 치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동굴의 암석에 그림을 그려 그들의 어머니인 자연에게 동물과 식량, 행운을 달라고 기원하고 싶었을 거라고 말이다. 그들은 다양한 종류의 점토에 때로는 산화철을 섞어 여러 가지 색소를 만들고 그것에 동물의 기름을 섞어 끈적끈적한 그림물감을 만들었다.

4. 하드자베족

지금은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대 농업과 산업이 이런 오래된 인간 사회까지 거의 완전히 퍼진 탓이다. 그러나 거의 잊힌 세계의 오지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아프리카 숲속에서, 그들은 땅이 농사짓기에 좋지 않은 곳이나 도시가 번성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붙박여 살고 있다. 

하드자베족은 현재 탄자니아가 있는 중앙아프리카 오지에서 산다. 최근까지도 이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야생 동물을 사냥하고 열매를 채집하며 숲에서 잘 살았다. 그러나 2006년에는 겨우 2천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곳을 침입하는 농부들과 야금야금 진행되는 도시화에 포위되어 나무가 울창한 숲 지대로 밀려난 탓이다.

이들에게는 침략의 역사가 없어, 침입하는 농부들과 도시 사람들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전통적 사냥터에서 물러나 훨씬 살기 힘든 숲으로 들어갔고, 지금 거기서 되도록 현대 사회로부터 숨어 지내고 있다.

하드자베족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 최근에는 부족민 하나가 외부인에게 숲을 여기저기 보여주는 안내자로 고용되는 드문 일이 일어났는데 그의 봉급날에 돈을 다 같이 나누어 가지려고 부족민 전체가 진을 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대 사회가 명령과 엄격한 통제, 법, 경찰, 행정관, 통치, 통치자에 기대고 있다면, 하드자베족은 거의 지성과 협력에 기대고 있고 부족이 관리하기 좋게 작은 집단들로 편성되어 있다. 그들의 생존 비결은 유연한 것과 서로 기꺼이 돕는 것에 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고정된 집이 없어 발걸음이 가볍기 때문이다.

5. 마지막 혈통

이들의 DNA가 지금가지 연구된 모든 인간 집단 가운데 가장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 결과는 이들의 오랜 전통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유전자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들의 혈통이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유전자는 대대로 예측할 수 있는 비율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하드자베족의 혈통이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 초기에 나머지 인간 혈통과 갈라졌다고 믿으며, 이는 곧 그들이 우리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들도 현대 세계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이들의 혈통 또한 사라질 공산이 크다.

하드자베족의 생활방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석기 시대의 생활일반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그것이 꽤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식량 생산 과정에 참여하고 부족 전체가 이동하며 살아, 통치자나 가만히 앉아서 먹여주기를 기다리는 집단이 없다. 

이 사람들은 숲을 잘 알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무엇이 먹기 좋고 무엇이 먹기 좋지 않은지를 잘 안다. 숲에서 나는 식물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고 다른 건강 문제를 다루는 법도 수백 세대 동안 구전 되었다.

현대의 약도 대부분은 결국 자연에서 발견되는 성분으로 만들어진다. 하드자베족 사람들은 석기 시대 사람들처럼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약초와 식물 치료제에 대해 가장박식한 현대 약학자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있다.

6. 자연을 위한 생활

모든 자연적인 것에 대한 깊은 존중과 배려는 수렵채집인의 신화, 또는 종교의 토대였다. 그들에게는 신비와 경이로 가득 차 있었다. 숲에는 죽은 조상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고, 조상들은 사후에 돌아와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고 위로해주었다. 

그들이 먹고 자고 쉬고 따뜻하게 지내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덕분이었다. 그들에게 자연의 숲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들은 자연의 풍요와 자연의 자원을 완전히 믿고 의지했다.

아마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수렵채집인의 생활방식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인구의 전반적 수준이 저절로 조절된다는 점일 것이다. 수렵채집인은 늘 걸어서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므로 자식을 많아야 4,5년에 하나식 터울을 두고 낳을 필요가 있다.

자식이 너무 많으면 한꺼번에 데리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수만 년 동안 지구에서 약 500만 명이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았고,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일이 없었다. 방랑자처럼 떠도는 생활을 하려면 500만 명 정도가 적당했고, 그것이 자연에서 지속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왜 수만 년 동안 행복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던 500만 명의 사람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습관을 바꾸어 완전히 새롭고 훨씬 힘든 생활방식으로 돌아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