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의 시대

어떻게 인간의 종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 한 종만 마지막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아 그전까지 사람이 살지 않던 땅에 이주해 살며 말하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형태의 깃 달린 무기로 사냥하는 것을 배웠을까?

1. 현생인류의 조상

우리는 이제 호모 사피엔스, 즉 현대의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 아니었다. 두 종이 수천 년 동안 동시대를 살아 두 종 사이의 짝 짓기도 있었겠지만, 최근의 유전학적 증거는 그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붉은 머리카락과 주근깨, 창백한 피부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특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견된 25개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거의 50만 년에 걸쳐서 존재했고, 이것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면 호모 에렉투스에서 오늘날의 우리까지 오는 데 진화의 발걸음이 몇 걸음밖에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에티오피아 남부에서 발견되었다 1967년에 오모 강바닥에 쌓인 진흙 속 깊이 파묻혀 있던 인간의 두개골 두 개가 발견되었다. 이것들은 최근에 연대를 다시 측정한 결과 지금은 약 19만5천 년 전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오모 1‘과 ‘오모 2‘로 불리는 두 두개골은 꼭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처럼 보인다. 현생인류의 두개골보다 조금 큰 것을 제외하면 현생인류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이것들은 얼굴이 납작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왓지만, 그 전의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눈 위고 튀어나온 눈썹뼈는 없었다.

2. 개체의 감소

1997년에도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의 두개골이 에티오피아의 헤르토라는 마을에서 세 개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석기도 640점 이상 발견되어, 정교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이 석기들은 아마 근처에 있는 아와시 강 옆에 있던 깊지 않은 호수에서 살던 하마와 악어, 메기를 잡아 살을 발라내는데 쓰였을 것이다.

유전학적 연구는 오늘날 살아 있는 인류는 모두 이즈음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한 종의 인간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로 유전적 변이가 거의 없다. 포유류에 속한 대부분의 종들에 비해 그 차이가 아주 작다. 

그렇게 유전적 변이가 작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언젠가 우리 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고 그들이 서로 아주 비슷한 유전자 정보를 지니고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미치자 전문가들은 호모사피엔스가 자신의 역사 초기에 개체수가 거의 치명적일 정도로 급격히 줄었을 거라는 생각에 들어맞는 ‘사건’을 찾는 또 하나의 사냥에 나섰다.

하나는 약 7만5천 년 전에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에 잇는 토바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 지수 8의 대폭발이다. 전문가들은 이때 거대한 열점에서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분출해, 1981년에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세인트헬렌스 산에서 일어난 화산 분출보다 3천 배나 많은 에너지를 분출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면 대기가 완전히 먼지로 뒤덮여 햇빛이 몇 개월 동안, 아니 어쩌면 몇 년 동안이나 차단되어 지구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을 것이고, 어쩌면 그 때문에 빙하기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질병의 발생으로 인구의 많은 부분을 쓸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아프리카의 조상들에서 온 호모 사피엔스는 조상들을 본떠 자기들도 세계를 돌아다녔고, 국 다른 종의 인간을 모두 대체했다

3. 대규모 이주

지금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인종적으로 다양한 현생인류의 수많은 유전자를 추적해 이들의 조상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를 밝히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통지리학에서는 작은 유전적 변이를 통해서도 언제 어디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아마 처음에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이주를 한 것은 약 13만 년전에서 9만 년 전 사이에 빙하기 중에도 따듯한 간빙기가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약 7만 년 전부터 날씨가 추워져 빙하가 높은 산꼭대기를 덮으면서 아프리카 북부가 남부와 단절되고 아프리카 북서부와 북동부가 단절되었다. 

다윈이 발견했듯이 종이 물리적으로 단절되면 작은 변이들이 각각의 유전자 풀에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해 종이 다양해진다. 인류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네 인종 집단으로 분리되었다.

약 6만 년 전부터 이 네 무리의 인간들은 아프리카에서 따로따로 이주해 저마다 세계를 가로지르며 자기들의 작은 유전적 차이를 수출했다. 어떤 호모 사피엔스들은 아시아를 휩쓸며 마지막 남은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다

어떤 호모 사피엔스들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인도와 중국에 도달했다. 그들은 뗏목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약 4만 년 전부터 수백만 년 동안 유대류 포유동물의 영역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는 처음으로 노를 저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또 하나의 인간 사냥터가 되었다.

4. 도구의 발달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해수면이 역사에 남을 정도로 낮았을 때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왔다. 그들은 숲에서 500~800명 정도가 부족을 이루며 살며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발전시키고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과 도자기, 도구로 만들어냈다.

놀랍게도 그들은 250여 년 전에 최초의 유럽 탐험가들이 손에 총을 들고 와 이 땅을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할 때까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살았다.

처음 유럽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들은 약 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걸어갔다가 중동을 거쳐 북쪽으로 왔다. 이 사람들을 때로 크로마뇽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1868년에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 있는 크로마뇽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유골이 발견된 것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생활양식과 과학기술, 문화에서 아주 큰 변화를 가져왔고, 세계 최초로 특수하게 날아가도록 설계된 도 만들어냈다. 활과 화살은 아마 이동 중에 어딘가에서 발명했을 것이다.

어쩌면 북아프리카나 중동에서 발명했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두 곳에 초목이 무성해 사냥감과 커다란 야생 동물이 가득했고,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어 쓴 몽둥이로 가까운 거리에서 죽이기보다는 먼 거리에서 죽이는 것이 훨씬 쉽고 안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부터 인간의 도구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처음으로 뼈와 엄니, 나뭇가지 같은 뿔이 바느질할 때 스는 바늘과 동물의 기름을 태워서 불을 밝히는 숟가락처럼 생긴 등잔 같은 유용한 가재도구를 만드는 데 쓰였을 뿐 아니라 장식을 만드는 데도 쓰였다.

크로마뇽인의 무덤에서는 목걸이와 목걸이 장식의 형태로 보석이 묻혀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최초의 질그릇 항아리도 이 시기의 것이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세계 최초의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1908년에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풍요의 여신 상으로, 약 2만4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5. 인류의 이동

그때는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약 2만2천 년 전에 마지막으로 북극에서 거대한 빙상이 내려왔고, 이것은 1만2천 년 뒤에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이 시기에 크로마뇽인은 한층 창백한 피부를 드러내 그러한 기후 변화에 적응했다. 흰 피부는 햇빛이 약한 빙하기에도 뼈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타민 D를 충분히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크로마뇽인은 약 2만 년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이들은 약 1만 년 전에 프랑스에서 걸어서 영국 해협을 건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은 뒤에야 그곳에 물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최초로 영국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최초로 영국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은 그 전에도 일곱 번이나 영국 제도로 이주해서 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약 70만 년 전에 호모에렉투스가 처음 그런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아마 주기적으로 오늘날의 런던까지 얼음으로 뒤덮였던 빙하기의 혹독한 기후 조건 탓이었을 것이다. 빙하기에는 런던처럼 남쪽에 있는 지역에서도 추위가 극심해 어떤 유형의 인간도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6. 신세계의 발견

약 1만5천 년 전에도 지구의 많은 물이 거대한 빙하에 갇혀 해수면이 낮아졌다. 베링지아라는 폴란드만 한 거대한 육교가 지금은 너비 95킬로미터로 펼쳐져 있는 베링 해협을 가로질러 러시아의 동쪽 끝과 알래스카를 연결했을 정도다.

따라서 그때는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아마 그때까지는 북아메리카에 사람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수천 년 전에 남아시아에서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태평양에 있는 섬들을 거쳐 북아메리카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남북 아메리카는 인간이 이주해 살 수 있는 마지막 거대한 대륙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그것을 가리켜 ‘신세계‘라고 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다. 아시아를 가로질러서 가는 동안 사람들은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큰 동물의 뒤를 따르기도 하고 이동하면서 사냥도 하고 들쑥날쑥한 자연의 기후 변화도 최대한 활용했다

북아메리카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파나마라는 거대한 두 대륙을 잇는 육교를 통해서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은 날씨가 훨씬 따뜻해 초목과 사냥감이 풍부했다.

석기 시대 사람들이 지구의 이 지역에 다다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 다다랐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많은 야생 생물이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자연의 생태계 가운데 소수는 아직도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이제 인간이 지구 전체를 둘러쌀 정도로 널리 퍼지면서 세계의 생물 가운데 많은 것이 갈수록 확대되는 인간의 영향력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진화

어떻게 초기 인간들이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해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로 퍼져나갔을까, 그리고 어떻게 불을 다룰 줄 알게 되어 갓 사냥한 고기를 요리했을까?

1. 호모 에렉투스

약 200만 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는 호모 에렉투스라는 새로운 종의 인간으로 진화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 사피엔스인 오늘날의 우리와 훨씬 많이 닮았다. 오랫동안 전문가들은 현대 인류의 조상이 중국이나 자바에서 처음 나타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적어도 5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에렉투스의 뼈가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 근처에 있는 늪에서 약 180만 년 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열 살짜리 남자아이가 발견된 덕분에 소년이 호모 하빌리스가 모두 자취를 감출 무렵에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투르카나 소년은 1984년에 아프리카에 사는 영국 고생물학자 리처드 리키가 이끄는 화석 사냥꾼 팀에게 발견되었다. 그것을 발견하고 얼마 안 되어 리키는 ‘소년의 뼈를 공들여 발굴했더니 인간이 되기 직전의 종이 나타났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우리는 아프리카인을 하나의 조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상은 이 소년과 같은 종이다’라고 했다.

투르카나 소년은 살았을 때 피부가 검고 땀을 많이 흘렸다. 소년과 같은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열기에 머리카락을 잃었고, 이는 곧 털이 필요 없었다는 말이다. 검은 피부와 땀샘은 이 초기 인간들이 아프리카 초원의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다. 

소년은 조상인 호모 하빌리스와 달리 코가 길게 튀어나왔고, 이것 또한 피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소년의 골반은 소년이 직립보행을 했음을 보여주고, 소년의 두개골은 크기가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그것이 1100cc나 되어, 호모 하빌리스보다 거의 두배나 컸다. 그런데 뇌가 크면 식량이 더 필요하다. 걸핏하면 굶주린 치타나 갑자기 덤벼드는 사자에게 희생되고는 했던 진화상의 조상과 달리 호모 에렉투스는 창을 만든 최초의 인간이었다. 들짐승들과 겨루어도 거의 언제나 이겼다.

2. 불의 사용

호모 에렉투스는 어떤 야생 동물보다는 유리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손과 뇌,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을 다룰 줄 아는 것이었다. 불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은 그의 조상들을 몸시 괴롭혔던 큰 동물들을 겁을 주어 쫓아버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그것은 또한 호모 에렉투스가 세계 최초의 요리사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7만 년 전 멸종되기 훨씬 전부터 이 초기 인간들은 요리를 해서 먹으면 날고기를 먹을 때보다 에너지를 빨리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요리를 하면 소화되는 시간도 짧아진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거의 150만 년 전에 인간이 모닥불을 피운 잔해가 발견되었다. 불을 피우면 흙이 자기를 띠어 인간이 불을 피웠다는 숨길 수 없는 증거가 남는다. 그런데 누가 인간에게 불을 피우는 것을 가르쳐주었을까? 인간은 어떻게 불을 다룰 줄 알게 되었을까? 

고대 그리스인의 신화에 따르면 티탄족이었던 프로메테우스가 회향나무 가지를 들고 가서 신에게서 몰래 불을 훔쳐 가지고 내려왔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죄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그 사실을 알고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묶어두고 날마다 독수리를 보내 그의 간을 쏘아 먹도록 했던 것이다. 그의 간은 독수리가 돌아와 다시 쪼아 먹을수 있도록 매일 밤 다시 자랐다.

제우스는 불을 다룰 줄 알게 된 인간에게도 복수를 했다.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어여쁜 여자를 상자와 함게 지상으로 내려 보내며 절대 상자를 열지 말라고 했다. 물론 판도라는 유혹에 못 이겨 상자를 열었고, 결국 인간은 영원히 고통과 절망에 신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 언어의 사용

그러나 화석 증거는 호모 에렉투스가 돌을 사용해 불을 피우는 요령을 습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북부에서는 5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불에 그은 부싯돌 조각이 그들의 야영지 여러 군데서 발견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100명가량이 무리지어 살며 날카롭게 간 부싯돌을 이용해 함께 사냥했다. 이들은 피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쫓아가서 야생 동물을 붙잡거나 덫을 놓아 잡았다. 이들이 만든 도구는 호모 하빌리스가 처음 만든 것들보다 훨씬 정교했다.

가장 큰 차이는 도끼를 양날 모두 날카롭게 만든 것이다. 이 ‘양면 석기‘는 그 전 시대의 것보다 네 배나 성능이 좋았고, 나무를 자르고 뿌리를 파내고 사냥한 동물에서 고기를 발라내고 가죽을 벗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을 할 수 있었을까? 과학자들은 투르카나 소년의 뼈를 보면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을 하려면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러는 데 필요한 복잡한 신경계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척추의 신경 구멍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종류의 몸짓 언어나 오늘날 십대들이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간단히 줄여서 쓰는 말 같은 것을 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휴대용 도구와 보호해야 할 공동체, 그리고 불의 마력이 있었기에 식량을 얻기 위해 필요하면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 외부의 삶을 찾아나선 최초의 인간, 인류 최초의 이주민, 아프리카의 마르코 폴로였다.

4. 호모 하이델베르켄시스

지구의 대륙들이 거의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렬되어 그때도 지금처럼 육로로 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남아시아와 인도, 중국으로 가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자동차나 배, 비행기는 물론 길도 없던 시절에 석기 시대 사람들이 정말로 그 먼 길을 갈 수 있었을까? 우리 대부분과 달리 그들에게는 한 가지 크게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저우커우텐의 산딩동화석은 중국의 동해안에서 발견되었다. 1927년에 여기서 40명이나 되는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것들은 약 4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은 안타갑게도 없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숨겨놓았다가 1941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에 두려고 잘 싸서 보냈는데, 그후로 행방이 묘연하다. 1945년에 일본 병원선 아와마루 호에 있다가 물에 잠겼다는 설도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평균 30년 정도 살았다. 그리고 아무리 느긋하게, 예를 들면 1년에 10마일씩 걸어갔어도 600년이면 아프리카에서 중국까지 6천 마일에 이르는 땅을 가로질러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약 30세대에 해당한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180만 년 전의 것이고 저우커우텐에서 발굴된 것이 40만 년밖에 안 되었으니, 그들은 충분히 아프리카에서 중국까지 갈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초기 인간은 호모 에렉투스 시대부터 살기 좋은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 대륙을 돌아다녔다. 영국에 인간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최초의 증거는 70만 년 전의 것이다. 서섹스 주에서 발견된 인간 두개골인 복스그로브 사람은 호모 하이델베르켄시스로 알려진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으로, 약 50만 년 전에 살았다. 

호모 에렉투스가 아시아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을 때는 날씨가 많이 나빠졌다.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차가운 냉기로 인해 빙하가 내려와 대륙을 덮었기 때문이다. 아주 멀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호모 에렉투스에게는 그런 추운 날씨가 큰 문제였다. 불의 마력도 한 번에 수천 년식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덮쳤던 아주 차가운 기온에서는 생존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했다

5. 네안데르탈인

1857년에 독일 북부의 뒤셀도르프 근처에서 일하던 채석장 노동자들이 네안데르 계곡에서 사람 뼈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의 발견으로 동식물학자들은 처음으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전에 여러 종의 인간이 있었을지도 모르며 인간이 유인원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그들이 몰랐던 것은 유전적으로 우리 인간이 사실은 바로 유인원과의 한 갈래라는 사실이었다.

그후로도 많은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약 35만 년 전의 것이며, 이는 곧 아주 오랫동안 동시에 여러 종의 인간이 살았다는 말이 된다. 약 7만 년 전까지는 말이다. 이때 호모 에렉투스 계열이 사라졌고, 이는 아마 기후가 변하고 또 하나의 강력한 종인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탓이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기간에 호모 에렉투스, 호모 에르가스테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로데시엔시스 이렇게 적어도 다섯 종의 인간이 지구에 살았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종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과학자들은 여전히 그 5종 가운데 일부는 독립된 종인지 아종인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싸웠을까? 이들은 함께 살았을까? 저마다 다른 공동체에서 살았을까? 이들은 이종교배를 했을까? 이들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모든 것에 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이견과 혼란이 있다. 그래도 확실해 보이는 것은 호모 에렉투스가 약 17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이주하자 세계 곳곳에서 여러 종의 인간이 진화되어 나왔다는 것, 그리고 지리적 차이와 기후의 차이가 작지만 의미 있는 진화상의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종들은 많이 섞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세상에 인간이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아마 유럽과 아시아 대륙 전체에 100만 명 정도가 퍼져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두 대륙에 40억 이상이 사는데 말이다.

6. 도구의 사용

네안데르탈인은 약 35만 년 전에 아시아에 처음 나타났고, 날씨가 허락하자 북쪽과 서쪽으로 퍼져 유럽으로 들어갔고, 나중에는 영국까지 건너갔다. 영국에서는 토키에 있는 켄스동물에서 3만5천 년 전의 것으로 밝혀진 턱뼈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현생인류의 뇌보다 아주 크지는 않아도 결코 작지 않다. 네안데르탈인은 또 우리보다 털이 많고 키는 대개 작았지만 우리처럼 직립보행을 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보다 강했다.

코가 뭉툭하고 이마가 눈썹 위로 튀어나왔다. 이런 것들은 거의 모두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이 초기 인간의 표면적을 줄여 혹독하게 추운 빙하기에 보온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도구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최근의 고고학적 증거는 이들의 손이 우리 손보다 민첩했으면 민첩했지 덜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안데르탈인의 도구가 발견된 곳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르무스티에라는 곳이다.

1909년에 거기서 고고학자들은 거의 완벽한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발견했다. 4만5천 년도 안 된 것이었다. 고고학자들은 그곳에서 두개골과 함게 솜씨 있게 다듬어진 날카로운 석기도 수백 점 발견했다.

네안데르탈인은 그 가운데 일부는 무기로 썼다. 그들의 창은 던지도록 되어 있지 않아 찌르고 때리는 데 썼다. 석기는 그들이 썩 괜찮은 쉼터를 짓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인간 최초의 집이었다.

그들은 또 최초로 죽은 사람을 묻은 것으로도 알려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음 생으로 갈 수 있도록 묘에 장식을 남겼다. 이는 분명히 그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쩌면 종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발전시켰다.

7. 언어 능력

아마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발견은 1995년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화석 수집가 이반 투르크 박사가 네안데르탈인의 집에 있던 벽난로 옆에서 발굴한 것이다. 그는 속이 빈 곰뼈에 한 줄로 구멍이 여러 개 난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세상에 알려진 악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의 파편일 수도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의 플루트 말이다.

이 선사시대의 피리로 그들은 무슨 곡을 연주했을까? 말하기 어렵다. 일부밖에 남지 않아 전체는 얼마나 오래되고 원래는 구멍이 몇 개나 있었는지 아무도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그것으로 반음 낮춘 3음으로 오늘날 들으면 단조나 우울한 곡조로 들렸음직한 것을 연주했을 거라고 믿는다.

1983년에 이스라엘에 있는 한 동굴에서 현생인류의 설골과 거의 동일한 네안데르탈인의 뼈가 발견되었다. 설골은 우리의 혀를 목과 연결시키는 뼈다. 그렇다면 이는 곧 네안데르탈인이 거의 틀림없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네안데르탈인은 또 루시와 달리 척추에서 혀를 조절하는 신경이 들어가는 구멍의 크기도 현생인류와 거의 같다. 이는 그들이 광범위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음악과 의식, 무기, 도구, 대화는 지능과 두뇌, 문화가 있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인간의 것들이다. 네안데르탈인은 빙하기에 동굴에서 힘들게 살면서도 그것을 충분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건장했겠지만, 그들이 우리보다 짐승 같았다고 말해주는 것은하나도 없다.

이 강하고 총명하고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을 알려면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보아야 할 것이다

생각의 탄생

어떻게 유인원이라는 생물이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걷는 것을 배우고 사냥을 위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고 평균 뇌보다 큰 뇌를 가진 종으로 진화했을까?

1. 유인원 화석

차드는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이 나라는 대부분이 불모지다. 중앙은 매우 건조한 평원이고 북부는 사막, 북서부는 메마른 산, 남부는 열대 저지대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먼지가 많고 가장 황폐한 곳에서 역대 가장 흥미로운 역사적 유물 가운데 하나가 발견되었다.

2001년 7월에 모든 인간의 조상일 수 있는 생물의 두개골이 미셸 브뤼네라는 프랑스 사람이 이끈 네 명의 과학자 팀에게 발견되었다. 그것은 약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사람처럼 생긴 동물의 뼈였다. 어떤 과학자들은 바로 그 전에 유인원의 한 갈래인 호모가 오늘날의 침팬지가 된 갈래와 분리되었다고 믿는다.

뼈를 보면 이 생물은 눈썹이 짙고 이빨이 짧으며 얼굴이 현생인류와 매우 비슷했다. 머리는 작아, 350cc밖에 안 되었다. 이것은 침팬지와 비슷한 크기이며, 이에 비해 현생인류의 두개골은 1350cc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이 두개골만으로는 이 인간의 조상이 두 발로 걸었는지 네 발로 걸었는 지도 판별할 수가 없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것이 유인원과 인간을 이어주는 고리라고 생각한다. 이행기의 종으로서, 모든 인류의 조상인 일종의 이브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들은 이 뼈의 소유자가 암컷 고릴라의 초기 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2. 두 발로 걸은 ‘루시’

이 두가지 발견이 이루어진 뒤에 과학자들 사이에서 지루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것들이 최근의 유전자 분석과 어긋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분자시계’라는 것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의 분화는 적어도 500만 년 전이나 600만 년 전에 일어났어야 한다. 만일 그보다 오래 전에 일어났다면 우리의 유전자와 침팬지의 유전자가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 우리의 유전자와 침팬지의 유전자는 적어도 96페센트가 같다.

1974년에 발견된 ‘루시‘라는 이름의 뼈도 최근에 다시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유전학자들에게 인간과 침팬지의 분화가 700만 년 전보다는 더 최근에 일어났다는 그들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화석 증거를 제공했다. 

루시는 320만 년 전에 에티오피아에서 살았다. 루시는 미국 화석 전문가 도널즈 조핸슨이 이끈 국제 과학자 팀에게 발견되었다. 1974년 11월 30일에 아와시 강 옆에서 조핸슨과 그의 학생 가운데 하나였던 톰 그레이가 인간의 화석을 찾다가 비탈면 위쪽에 팔뼈 조각이 쑥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흙을 파헤쳐보니 턱뼈와 넓적다리뼈, 갈비뼈도 있고 팔뼈 조각도 더 있었다. 결국 하나하나 발굴한 결과 완벽한 골격의 40퍼센트가 넘게 나왔다.

그들은 그녀를 ‘루시‘라고 불렀다. 분명히 여자였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조핸슨이 비틀스의 노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는 키가 1.1미터쯤 되었고, 몸무게는 29킬로그램이었다. 루시의 발견을 세상에 알리자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과학자들이 루시의 골반 형태를 보고 그녀가 명확히 두발로 걸은 것으로 알려진 유인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직립보행의 시작

4년 뒤에 또 다른 화석 사냥꾼 팀이 탄자니아 근처에서 두 번째 놀라운 발견을 했다. 라에톨리라는 곳에서 푸석푸석한 화산재에 완벽하게 보존된 일련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루시 같은 생물이 우리처럼 직립보행을 했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뒷받침해주는 증거였다.

이 발자국들은 초기 인간들이 근처에 있는 물웅덩이로 걸어가면서 만든 것이었을까? 그런데 그들이 지나가고 얼마 안 되어 화산이 터졌고, 산더미처럼 쌓인 화산재가 그들의 발자국을 바위에 남겨진 흔적 화석으로 보존했다. 이 발자국들은 370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것은 두 발로 걷는 생물이 만든 것이었다.

루시가 발견될 때까지는 과학자들이 초기 인간의 지능이 높아서 두 발로 걷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직립보행을 하면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해 도구와 무기의 형태로 과학과 기술을 이용할 수 있고, 이는 그들이 번창하고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시는 두 발로 걸었고 따라서 그녀의 종이 인류의 가장 먼 조상이었을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녀의 머리가 침팬지의 머리보다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놀라웠다.

4. 직립보행의 진행

일반적으로 머리가 작다는 것은 뇌가 작다는 말이고 뇌가 작다는 것은 지능이 낮다는 말이다. 루시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인류가 큰 뇌와 큰 머리를 갖기 오래전부터 직립보행을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직립보행이 좋은 생각이라는 것을 이해할 지능이 생기기 전에 말이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네 발로 걷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게 없었을 때에 루시에게 직립보행을 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 발로 걷는 것이 네 발로 걷는 것보다 어떤 큰 이득이 있었을가? 위험을 피하거나 먹이를 뒤쫓는 일은 두 발만큼이나 네 발로도 빠르게 할 수 있다. 

사슴이 달아나거나 치타가 사냥하는 것을 보라. 두 발로 사는 것은 몇 가지 큰 단점도 있다. 편안하게 걸으려면 두 발로 걷는 암컷은 골반이 좁아야 하는데, 그러면 출산할 때 무척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산모와 새끼의 목숨도 위태롭다. 

루시 같은 생물에게 똑바로 서도록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먹이를 찾으려고 숲에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것만큼이나 단순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이 평평해져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었고, 몇 세대가 흐른 뒤 똑바로 서서 걷는 습관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정말로 그랬다면, 그것은 단순히 진화하며 적응한 결과치고는 아마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5. 공통의 조상

최근의 한 연구에서 러닝머신에서 걷는 인간과 침팬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 두 발로 걸으면 네 발로 걸을 때 쓰는 에너지의 25퍼센트밖에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살기 힘들었을 때는 두 발로 걷는 동물이 생존하는 데 상당히 유리했을 것이다. 똑바로 서서 걷는다는 것은 이런 동물들이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의미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 이런 동물들은 이제 먹이도 임시 보관소로 쉽게 가져갈 수 있었고, 따라서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그들에게 숲 밖으로 퍼져나가 지구의 날씨가 나빠지면서 많은 숲을 대체하고 있던 드넓은 초원에서 사냥을 해도 좋겠다는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루시가 발견된 뒤로 다른 비슷한 동물의 뼈도 많이 발견되었다. 최근에 발견된 것은 ‘살렘’이라고 하는 세 살 된 아이의 뼈다. 살렘의 뼈는 2000년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되었다. 살렘은 그때부터 계속 공들여 발굴한 결과 완벽한 두개골과 빗장뼈, 갈비뼈, 무릎뼈를 드러냈다. 이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부르는 생물의 유골로, 이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은 발‘은 290만 년 전의 것이다.

작은 발‘은 1994년에 화석 수집가 로널드 클라크가 오래된 소뼈가 든 자루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분자과학자들에게는 루시와 루시 같은 종류의 화석이 침팬지와 인간이 약 400만 년 전에서 500만 년 전에 공통의 조상에서 나왔다는 그들의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훌륭한 증거다.

그러나 새로 발견된대로 루시가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인간과 침팬지가 다르다는 결정적 증거도 제공해준다.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과 현대 침팬지를 가르는 첫 번째 주요 차이점이다. 

6. 큰 뇌의 진화

호모 하빌리스는 우리보다 작았지만 루시보다는 훨씬 크고 훨씬 똑바로 서서 걸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호모 하빌리스의 뇌가 루시의 뇌보다 거의 두 배나 컸다는 사실일 것이다. 호모 하빌리스를 보면 루시는 첫 번째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립보행을 하는 침팬지에 가까운 존재로 여기게 된다.

호모 하빌리스는 영리하게 도구를 쓴 증거가 있는 최초의 인간이다. 이들은 부싯돌을 날카롭게 갈아 뼈에서 고기를 발라냈고, 이로써 우리는 구석기 시대로 알려진 시대로 들어서게 되며, 호모 하빌리스는 인간이 지구의 자연공원에 합류했다고 말해도 거의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모 하빌리스는 최초로 우리와 같은 것, 세계 최초의 호모였다.

호모 하빌리스는 똑바로 서서 걸음으로써 물건을 만드는 공작 기술을 펼치기 시작할 수 있었다. 목공이나 석공처럼 나무를 깎고 돌을 다듬으려면 아주 정교한 손과 눈의 협동 작업이 필요하다. 이 같은 기술에는 잘 발달된 운동 기능과 손과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므로, 그러한 과정은 아마 큰 뇌로의 진화를 촉진했을 것이다.

뇌는 클수록 에너지를 많이 쓴다. 우리 뇌를 작동시키려면 하루에 400칼로리가 필요하다. 그저 생각을 하는 데만 우리가 하루에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가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큰 뇌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는 고기를 먹을 때 가장 잘 공급된다. 

고기를 얻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도구와 무기를 써서 사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도구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생물은 뇌가 가장 큰 생물이었다. 눈사태처럼 진화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두 루시가 운 좋게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사냥과 무기, 도구, 지능의 발달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 진정한 호모의 출현, 호모 하빌리스와 그것을 넘어선 진화를 뜻했다.

루시의 조상 가운데 일부는 나무에 그대로 머물렀고, 그래서 굳이 직립보행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들은 오늘날의 침팬지보노보로 진화했다. 자유로운 손이 없었다면 큰 뇌와 현생인류의 지능을 낳은 진화상의 연쇄반응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뇌도 작은 채로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7. 유인원의 의사소통

침팬지와 인간이 유전적으로 아주 가까운 것은 이런 진화상의 변화가 역사에서 아주 최근에, 아마도 약 400만 년 전에 일어났기 대문이다. 그러나 이런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능과 뇌의 크기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났다.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변화는 언뜻 생각하면 단순해 보이는 변화지만, 이런 단순한 상황의 변화도 진화 과정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에 가장 가까운 동물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침팬지도 고릴라처럼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칸지는 1980년에 태어나 지금 미국 조지아 주에서 사는 보노보 유인원이다. 칸지는 영어 단어를 3천 개 이상 듣고 이해할 수 있다. 고릴라인 코코보다 많은 수다.

칸지는 응답을 하고 싶으면 일련의 그림을 가리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2006년 11월에는 칸지가 마시멜로와 불을 상징하는 것을 가리키기에 칸지를 데리고 숲으로 갔더니 지나가면서 작은 가지들을 낚아채서는 높이 쌓아올려 불을 붙이고 막대기에 있는 마시멜로를 노르스름하게 구워 먹었다고 한다.

빙하의 시대

어덯게 지구의 자전이 주기적으로 변하고 대륙 지각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기후변화가 일어나 드넓은 초원과 극지방의 빙원이 만들어졌을까?

1. 대륙의 형성

지난 2억 년 동안 지구의 지각들이 좀이 쑤신 듯 가만히 있지 못하더니 점차 쪼개져 오늘날의 거대한 대륙들이 되었다. 사실 이것이 지구의 생물들에게는 아주 좋았다. 어떤 생물이든 한 종류의 생물이 공룡처럼 육지를 지배하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각이 쪼개지면서 바다와 대양은 천연 장벽이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유형의 생물들이 진화되어 나왔고, 많은 생물이 저마다 다른 서식지에서 번성할 줄 알게 되어 경쟁도 줄어들었다. 대륙이 흩어지자 강가와 바닷가, 습지, 염전의 수도 늘었고, 이것들은 모두 지구의 생물이 번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2. 기온의 하강

6550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했을 때 지구의 대기 속 이산화탄소의 양은 거의 3천ppm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1832년에는 284ppm으로 뚝 떨어졌다.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들자 같은 기간에 지구의 기온도 뚝 떨어졌다.

그런 대기의 변화기온의 변화는 주로 끊임없는 지각의 충돌로 일어났다. 인간 시간의 척도로는 지각이 아주 느리게 움직여도 지각의 충돌은 지구의 생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약 9천만 년 전에는 인도 대륙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잘려나와 사실상 제멋대로 달리는 거대한 범퍼카가 되었다. 인도 대륙은 1년에 15센티미터를 달리는 유례없는 속도로 질주하다가 위쪽으로 살짝 돌며 약 4천만 년 전에 아시아 대륙과 충돌했다. 

장장 3천 킬로미터를 이동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도 대륙이 다른 대륙들보다 얇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했을 거라고 믿는다. 인도 대륙은 아시아 대륙과 충돌한 뒤 지금은 1년에 5센티미터라는 좀 더 느긋한 속도로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인도 대륙이 자기보다 훨씬 크고 훨씬 느리게 움직이는 아시아 대륙과 충돌했을 때 지구에서 가장 큰 산맥이 만들어졌다. 히말라야 산맥이다. 과학자들은 히말라야 산맥과 엄청나게 높은 티베트 고원 탓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크게 감소해 지구의 기온이 뚝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3. 대륙의 충돌

높은 히말라야 산봉우리들로 인해 공기가 차가워지자 따듯한 인도양에서 올라오는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응결되어 어마어마한 계절풍이 만들어졌고, 이 계절풍은 인도와 티베트고원 남부에 짐을 부렸다.

비가 내리자 공기 속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았고, 이것은 결국 강과 시내를 통해 바다로 흘러가 해저에 침전되었다. 이산화탄소가 안전하게 대기에서 제거되자 지구는 더욱 차가워졌다.

한편 다른 땅덩어리들도 느리지만 무질서하게 지구를 가로질러 나아가다 서로 충돌해 이에 못지않은 결과를 낳았다. 인도 대륙이 아시아 대륙을 들이받았을 때쯤 아프리카 대륙은 자신을 아시아 대륙과 분리시킨 바다를 밀어올렸다. 그리하여 해저가 융기해, 테티스 해를 가로지르는 일련의 육교가 생겼다.

테티스 해는 한때 오늘날의 중동을 인도양과 연결시켰던 긴 물길이다. 아프리카 원숭이는 아마 그때 생긴 다리를 이용해 육로로 아시아에 들어가 우리 과인 유인원과의 첫 번째 구성원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최초의 낙타는 알래스카를 러시아 동쪽 끝과 연결시켰던 또 다른 육교를 통해 북아메리카에서 아시아의 초원으로 들어가, 결국 중동의 사막에 정착할 수 있었다.

4. 지각변동

아프리카 대륙은 이 충돌로 튕겨져나와 북쪽으로 밀리다가 유럽 대륙과 부딪혔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 프랑스에서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까지 뻗어 있는 유럽의 알프스 산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약 2천만 년 전에 시작된 이런 일련의 연쇄 충돌로 아프리카 대륙이 중동으로 더 밀고 들어가는 바람에 테니스 해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이것은 결국 수에즈 운하의 건설로 다시 연결되었다.

600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 대륙이 오늘날의 에스파냐 남부와 너무 가까워지는 바람에 대륙의 육중한 무게에 밀려 새로운 산맥이 솟아올라 지중해가 사방으로 육지에 둘러싸였다. 대서양과의 연결이 끊기자 지중해는 거대한 호수로 변했고, 점차 물이 말라 해저에 더러운 흰 바다소금만 켜켜이 남았다.

오늘날 어떤 곳에서는 이런 소금이 1마일 넘게 두껍게 쌓여있어, 전문가들은 이 분지가 100만 년 남짓 동안 마흔 번이나 물이 말랐다가 채워지기를 반복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지구는 거인들의 놀이공원에서 일어난 지각의 움직임을 동력으로 삼아 바다에서 엄청난 양의 소금을 제거했다.

5. 빙하의 시작

그러나 약 500만 년 전에서 300만 년 전에 한때 에스카냐와 북아프리카를 연결했던 산맥을 뚫고 마지막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던 거대한 절벽들이 골짜기 바닥까지 아마 3천 미터나 아래로 고꾸라졌을 것이다. 3천 미터면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50배 이상 되는 높이다.

정확히 100년 만에 지중해 분지는 다시 한 번 물로 가득 찼다. 날마다 170세제곱킬로미터의 물이 거대한 폭포가 되어 떨어졌고, 이것은 아마 세계의 자연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지구는 세계의 맞은편에서 떠다니는 또 하나의 땅덩어리 덕분에 이미 빙하기에 들어가 있었다.

약 4천만 년 전에 남극 대륙은 남아메리카 대륙과 분리되어 남쪽으로 내려가 남극에 자리 잡았다. 남극 대륙이 남아메리카 대륙과 쪼개졌을 때 새로운 해협이 열렸는데, 이것이 오늘날 드레이크 해협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유명한 영국 탐험가이자 해적이며 바다로 세계를 일주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에게 발견되어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남극 대륙이 이동하자 전에는 북쪽으로 이동해 태평양과 인도양의 따뜻한 물과 섞였던 남극 해의 차가운 물이 이제는 남극 대륙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리하여 이 지역이 추워지자 한때는 열대였던 땅을 거대한 빙상이 덮었다. 오늘날의 남극 빙상은 1마일이 넘는 두께로 영국보다 50배나 넓은 땅덩어리에 펼쳐져 있다

이 드넓은 얼음 사막은 바다의 온도를 10도나 떨어뜨렸고, 새하얀 얼음은 햇빛을 공중으로 반사해 온도를 더 떨어뜨렸다. 남극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얼음 모자를 쓰면서 지구는 새로운 빙하기에 들어갔고 이 모든 것은 결국 고삐 풀린 땅덩어리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닌 탓이었다.

6. 초원의 생성

기온이 내려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증발되는 물이 줄어든다는 말이고, 그렇게되면 많은 내륙 지방의 강수량이 줄어들게 된다. 오늘날의 드넓은 초원을 탄생시킨 것은 그런 조건이었다. 유지하는 데 훨씬 많은 강수량이 필요한 숲을 초원이 대체한 것이다. 

동물들은 이런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고, 공간이 탁 트이면서 생존경쟁이 심해지자 더 큰 종으로 진화하고 더 수가 많은 무리로 진화했다. 드넓은 초원은 새들에게 먹이를 먹는 곳을 제공했고, 새들은 가장 좋은 곳을 찾아, 그리고 가장 나쁜 곳을 피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방식으로 빙하기의 힘든 상황에 대처했다. 씨가 풍부한 초원은 이동하면서 잠시 들러 배를 채울 수 있는 편리한 곳이었다. 초원은 결국 세계 지표면의 25퍼센트 이상을 덮게 되었다.

지구의 거대한 놀이공원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대륙 범퍼카가 된 것은 남아메리카였다. 약 300만 년 전에 남아메리카는 이웃에 있는 북아메리카와 충돌해 얇은 땅 조각을 매개로 해 북아메리카와 하나가 되었다. 이 충돌이 낳은 변화 역시 다른 충돌 못지않게 컸다. 그때까지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진화했던 포유류가 처음으로 두 대륙을 걸어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것에는 기회가 된 것이 어떤 것에는 재앙이 되었다. 새로운 포식자가 들어오고 먹이 먹는 곳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졌다. 남북아메리카의 대교환이라고 하는 이 사건은 300만 년 전에 절정에 이르렀다. 

최대의 피해자는 남아메리카의 큰 유대류인 주머니사자와 코뿔소와 코끼리를 닮은 것들이었다. 이것들의 뼈는 지금도 화석이 되어 땅속에 흩어져 있다. 이것들은 거대한 고양이와 개, 곰 같은 북쪽의 사나운 침입자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멸종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7. 두번째 빙하시대

두 대륙의 충돌은 지구의 날씨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대서양의 해류가 육지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이제는 태평양의 물과 섞이지 못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결과 새로운 날씨 체계가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멕시코 만류가 북쪽으로 따뜻한 공기를 퍼붓기 시작해 북서 유럽의 기온이 10도 이상 치솟았다. 멕시코만류는 수증기도 더 많이 가져왔다. 대서양에서 새롭게 증발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형성된 구름은 바람에 날려 북쪽으로 가면서 추운 극지방에 이르자 비가 눈으로 변했고, 눈은 오랜 세월 차가운 바다에 켜켜이 쌓여 두꺼운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그 결과 300만 년 전에 지구는 두 뻔째 얼음 모자를 쓰게 되었고, 이번에는 북극에서였다.

남극뿐만 아니라 북극에서도 얼음 모자를 쓰게 되자 지구는 더욱 추워졌다. 기온이 뚝 떨어져 지구의 많은 부분이 말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극지방으로부터 거대한 빙상이 펼쳐졌고, 펼쳐진 빙상이 때로는 오늘날의 런던과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까지 덮쳤다.

빙상은 캐나다의 드넓은 평원을 지나 오대호를 거쳐 뉴욕까지 손길을 뻗었다. 러시아의 대부분과 그린란드 전체가 얼음에 뒤덮였다. 수천 년 동안 전 세계의 바다가 두꺼운 얼음 덩어리였고, 1마일 이상 하늘 높이 치솟은 것도 많았다

많은 물이 얼어붙는 바람에 해수면도 엄청나게 낮아졌다. 오늘날의 영국 도버에서 프랑스 칼레까지 걸어서 갈 수 있었을 정도다. 영국 해협도 사라지고 얼어붙은 툰드라만 펼쳐져 있었다. 이 거대한 얼음벽이 끝나는 곳에서도 많은 것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북유럽에서는 기온이 섭씨 영하 80도까지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바람도 시속 200마일로 후려쳤다. 거대하고 육중한 빙하도 움직였다. 이것들은 거대한 불도저처럼 느리지만 거침없이 육지의 옆구리를 할퀴며 나아갔다가 기온이 다시 오르면 후퇴했고, 녹으면서 지났던 자리에 담수호를 흔적으로 남겨놓았다.

이들 빙하는 영국의 호수 지방에서 스위스의 산골짜기까지, 북아메리카의 오대호에서 노르웨이의 피오르에 이르기가지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호수와 골짜기 가운데 많은 것을 조각해놓았다.

8. 새로운 환경의 적응

이 같은 얼음의 정복지난 200만 년 동안 서른 번이나 일어났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얼음이 산에서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수 마일이나 밀고 내려와 할퀴고 지나간 절벽에 온갖 뒤틀린 형상을 만들어놓았고, 땅도 엄청난 힘으로 내리누르는 바람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후퇴한 뒤에 서서히 올라오기는 해도 그 속도가 매우 느렸다. 예를 들어 영국은 1만 년 전에 마지막 빙상이 후퇴한 뒤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 있지만, 1년에 겨우 1밀리미터 높아질 뿐이다.

그러나 이런 거대하고 극적인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생물은 번성했다. 대대로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의 변화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생물이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열대는 여전히 따뜻했고, 열대 우림도 약 4천만 년 전 빙하기가 시작되기 전보다는 훨씬 줄었지만 그래도 일부는 남아 있었다.

이제 좀 더 시원하고 풀이 많은 시대가 되었다. 바다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다른 땅으로 가는 둑길을 열었다 닫았다 했고, 두꺼운 얼음덩어리가 규칙적으로 거침없이 왔다 갔다 했다. 인류는 바로 이런 극적인 세상에 태어났다.

유대류와 포유류

유대류는 ‘주머니’가 있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이런 포유류는 새끼를 몸 밖에 달린 특수한 주머니에 넣어서 기른다. 

1. 유대류

유대류는 아주 작은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태어나면 어미 배로 기어올라가 주머니 속에 들어가서 어미 젖꼭지에 달라붙어 젖을 빤다. 새끼는 주머니 속에서 몇 주 동안 머물다가 혼자 주머니를 떠날 수 있을 정도로 크면 주머니 밖으로 나갔다가 따뜻한 온기와 먹을 것이 필요하면 주머니로 돌아온다.

유대류도 오늘날 우리에게 낯익은 다른 포유류들과 비슷한 길을 갔다. 물론 지금도 주머니 달린 두더지가 있고, 주머니 달린 쥐도 있다. 한때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주머니 달린 고양이와 개, 사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약 1500만 년 전에 아시아에서 박쥐와 집쥐가 들어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박쥐와 집쥐는 아시아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날거나 뗏목을 타고 건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을 때 바다를 건넜고, 약 4만 년 전에는 인간의 카누를 타고 왔다. 게다가 인간은 결국 딩고와 토끼, 낙타, 말, 여우까지 들여왔고, 이것들은 모두 원래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메이니아에 살았던 유대류의 생태계를 파괴했다.

2. 초기 포유류

포유류 가운데 단연 가장 큰 무리인 세 번째 부류는 유태반 포유류다. 인간이 속해 있는 유태반 포유류는 새끼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 뱃속에 둔다. 새끼의 피와 어미의 피는 태반이라는 기관에 의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태반을 통해 어미는 새끼에게 양분을 보내고 새끼는 어미에게 노폐물을 보낸다.

가장 먼저 출현한 유태반 포유류인 아프로테리아는 아마 오늘날의 코끼리와 바다소의 친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코끼리처럼 생긴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모든 포유류가 몸집이 작고 털이 있으며 공룡에게 잡아먹힐까 봐 두려워 밤에 먹이를 찾아다녔다.

소형 코끼리와 동물들은 아직도 한두 종이 남아 있는데, 주둥이가 긴 코끼리땃쥐는 자기보다 훨씬 큰 친척과 조금 닮았다. 최근의 분자 분석은 둘 사이의 관련성을 확인해주는 듯하다. 오늘날에는 코끼리가 아프리카코끼리인도코끼리 두 종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약 1만2천 년 전까지는 털이 난 매머드와 마스토돈 같은 것들이 북아메리카의 빙원과 일부 지역을 어슬렁거렸다.

약 5천만 년 전에 코끼리와 같은 과에 있는 동물들 가운데 몇몇은 바다로 돌아갔다. 바다소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바다소는 앞발을 이용해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꼬리가 방향을 잡는 키 역할을 했다. 뒷발은 몸속 깊숙이 두 개의 흔적뼈로만 남아 있다.

모든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바다소도 공기호흡을 해, 필요하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러나 절대 따뜻한 바다를 떠나지 않으며, 새끼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바다소는 사람들이 강과 강어귀에 있는 바다소의 서식지를 계속 파괴하는 바람에 멸종 위기에 있다.

3. 포유류의 진화

유태반 포유류가 남아메리카라는 고립된 땅에서는 완전히 다른 진화의 길을 택했다. 남아메리카에는 유대류도 살았다. 오늘날의 아르마딜로나무늘보, 개미핥기의 조상들은 식물과 벌레를 먹는 동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종류의 포유류를 우리는 이가 없거나 불완전하다 하여 빈치류라고 부른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세계 최초의 유제류도 나왔다. 유제류는 일반적으로는 발굽으로 더 많이 알려진 발톱으로 걷는 것을 배운 동물들이다. 유제류로는 톡소돈이라는 동물이 있었는데, 이것은 아프리카 코뿔소를 닮았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로 가는 길에 이 짐승의 뼈를 발견했다. 남아메리카에는 말도 있고 낙타 같은 동물도 있었다. 남아케리카의 이 모든 유제류가 지금은 멸종되었다. 

그러나 유제류가 남아메리카에서만 발견된 것은 아니다. 약 54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도 독자적으로 출현했고, 이것들은 훨씬 운이 좋았다. 이것들은 살아남아 오늘날의 사슴과 양, 영양, 돼지, 염소, 소, 기린, 하마가 되었다.

이것들도 일부는 바다로 돌아갔다. 오늘날의 고래와 돌고래는 사실 저 옛날에 바다에서 살던 하마와 관계가 있다. 이 하마들은 육지와 접촉이 끊어지자 진화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과정에 다리가 없어졌다.

4. 유제류와 포유류

유제류는 북아메리카가 아직 남아메리카와 연결되지 않았을 때 북아메리카에서도 나왔다. 오늘날의 말과 낙타, 코뿔소가 이들의 후손이다. 이들 기제류에는 몸집이 작은 개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말 히라코테리움도 있었다. 히라코테리움은 원래 숲에서 살았는데, 약 3500만 년 전에 날씨가 건조해지자 많은 숲이 탁 트인 초원으로 변했다.

탁 트였다는 것은 곧 작은 말도 노출되기 쉽다는 뜻이었고, 따라서 다리가 길어 위험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것들만 살아남았다. 개만 했던 히라코테리움은 수백만 년이 지나자 오늘날의 크고 빠른 말이 되었다.

낙타도 원래는 북아메리카에서 나왔다. 낙타는 말과 함께 세계의 다른 부분으로 퍼졌는데, 처음에는 육교를 건너 알래스카에서 아시아로 들어갔고, 아시아에서 다시 몽골로, 250만 년 전에는 마침내 아시아의 초원지대와 중동의 사막으로 들어갔다. 

다음에는 발로 걷는 포유류다. 식육류는 포유류 가운데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로, 살아 있는 후손으로는 고양이와 개, 족제비, 곰, 하이에나, 바다표범, 바다사자, 해마 등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조상이 같다. 이 공통의 조상은 약 5천만 년 전부터 빠르게 진화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런 여러가지 동물이 되었다.

유일하게 나는 포유류인 박쥐의 화석들도 이 시대의 것이다. 박쥐는 혀를 차 아주 높은 서라운드 사운드로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어둠 속에서도 ‘보는’기발한 방법을 개발했다. 

박쥐는 이런 소리의 반향으로 밤에도 정확인 모든 것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박쥐는 소리 하나하나가 반향이 되어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뇌 속에서 무엇이 어디 있는지 그림을 그린다. 반향이 오는 시간이 적게 걸릴수록 물체는 가까이 있다.

다음에는 갈고리 발톱이 달린 설치류로, 이것들은 무시무시한 흑사병 같은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아마 지난 1천 년 동안 쥐가 퍼뜨린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전쟁과 혁명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많을 것이다.

5. 영장류의 시초

영장류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그네 타듯이 휙 건너가고, 뛰어오르고, 건너뛰기의 명수였다. 공룡의 운명을 피하고 여전히 늪에서 어슬렁거리는 악어같이 육식을 하는 파충류로부터 멀리 떨어지려면 나무에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과일과 견과도 쉽게 얻을 수 있고 높은 나무에 있으면 시야도 넓어졌다.

영장류는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나타났다. 이 섬은 1억65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의 끄트머리에서 떨어져나갔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멸종 위기에 있어 보호를 받는 동식물 가운데 일부가 있다. 여우원숭이는 이들 초기 영장류의 후손이다. 여우원숭이는 마다가스카르 섬이 고립된 덕분에 살아남았다. 섬의 고립이 여우원숭이를 이들의 후손인 원숭이와 유인원으로부터 지켜주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원숭이와 유인원이 여우원숭이보다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여우원숭이는 오늘날 멸종 위기에 있다. 불법 벌목으로 숲속에 있는 그들의 자연 서식지가 파괴된 탓이다.

갈라고원숭이도 나무에서 사는 야행성 동물이다. 큰 눈과 뛰어난 청각, 긴 꼬리 덕분에 갈라고원숭이는 숲의 그늘에서 사는 데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큰 무리는 원숭이였다. 원숭이는 크게 나누면 ‘구세계’ 원숭이와 ‘신세계’ 원숭이, 유인원 이렇게 세종류로 진화했다.

6. 원숭이와 유인원

현대과학은 원숭이의 유전자와 유인원의 유전자가 정말로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숭이는 꼬리가 있고 유인원은 없지만, 생물학적으로 원숭이와 유인원은 모두 한 가족이다. 원숭이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났지만, 지금은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도 산다.

원숭이는 어떻게 아시아와 남아메리카로 갔을까? 육로도 없었던 데다, 원숭이는 날지도 못하고 헤엄도 못 치는데 말이다. 적어도 폭이 수천 마일이나 되는 바다를 건널 만큼 헤엄을 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다. 틀림없이 편승해서 갔을 것이다.

약 2500만 년 전에 아프리카 원숭이 무리가 뗏목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의 브라질 해안으로 밀려왔다. 이때 남아메리카 원숭이의 화석이 처음 나타났고, 이는 아프리카 원숭이들이 새로 채택한 주거지에서 번성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신세계 원숭이들은 코가 납작하고 꼬리를 이용해 그네를 타듯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동하고 나무에서 꼬리로 균형을 잡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들은 꼬리뼈만으로도 나뭇가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매달려 있을 수 있다. 꼬리뼈를마치 여분의 손처럼 사용한다

위험하게 대서양을 선너는 것도 충분히 모험적이지 않았는지 어떤 아프리카 원숭이들은 반대로 중동과 아라비아라는 육교를 건너 아시아로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긴팔원숭이와 오랑우탄은 오늘날 인도와 말레이시아, 중국, 보르네오 섬, 인도네시아, 자바 같은 곳에서 발견된다. 이것들이 떠나기 전에 꼬리를 잃었는지, 아니면 가는 도중이나 나중에 잃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긴팔원숭이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곡예사다. 이들의 놀라운 재주는 팔 그네 이동이라는 기술 덕분이다. 이 동물은 팔만을 이용해 마치 걸어가듯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이동할 수 있고, 아찔하게 높은 곳에 걸쳐 있는 나무도 마치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건널 수 있다. 이런 곡예를 할 수 있는 비결은 손목에 있다. 긴팔원숭이는 손목에 이런 목적에 맞게 진화된 절구공이 관절이 있어, 앞뒤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7. 유인원의 후손

아시아 오랑우탄아프리카 고릴라는 큰 유인원에 속하는 네 종의 동물 가운데 두 종이다. 인간처럼 놀기 좋아하는 오랑우탄은 복잡하고 정교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바로전에 입술 사이에 혀를 진동시켜서 소리를 내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오랑우탄 식으로 ‘잘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최근의 유전학적 증거들과 발견된 화석들은 아프리카의 큰 유인원이 한때는 아시아에서만 살았던 긴팔원숭이와 오랑우탄 같은 종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약1천만 년 전에 오랑우탄이든 긴팔원숭이든 이들 유인원 가운데 하나가 아시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로질러 다시 아프리카로 갔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것들은 오늘날의 고릴라침팬지로 진화했다.

인간은 유인원이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는 인류가 2천만 년 전에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생각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런저런 식으로 증명해줄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탓이다. 우리는 말을 하고, 물건을 만들고, 놀라운 기계를 발명하고, 깨끗하고, 영리하며, 자연을 지배해 우리 목적에 맞게 길들인 것 같다.

마침내 1990년대 초에 분자생물학자들은 우리 인간이 다른 큰 유인원과 96퍼센트 이상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분석은 인간이 아마 400만 년 전에서 700만 년 전 사이 언젠가 살았을 유인원의 후손임을 보여주었다.

이 유인원의 자손들은 한편으로는 침팬지와 이들의 사촌인 보노보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인류가 되었다. 그러나 정확히 이 조상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이 조상이 어디서 살았는지는 인류가 풀어야 할 최대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다.

진화의 전성기

숲속에 사는 야행성 동물에 지나지 않던 것들이 어떻게 공룡의 뒤를 이어 육상생물을 지배하고 지구의 떠다니는 대륙들로 퍼져나가 온갖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을까?

1. 포유류의 시초

만일 6550만 년 전에 저 소행성이 지구를 비켜갔다면, 인류를 포함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많은 동물이 과연 진화되어 나왔을까? 아마 이 물음에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의 생명의 역사를 되돌려 만일 공룡이 살아남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룡의 멸종으로 진화가 극적으로 다른 길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공룡이 사라지자 다른 동물의 무리가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고 지구의 다음번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는 포유류가 세상의 많은 동물의 무리 가운데 아주 주변적 존재에 불과했다.

포유류처럼 생긴 디메트로돈이 페름기의 대멸종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수백만 년 동안 육지를 지배했지만, 그것의 후손인 포유류는 거대한 도마뱀류, 즉 공룡의 부상으로 거의 완전히 그늘에 묻혀버렸다.

2. 포유류의 진화

그때는 포유류가 대부분 작고 다람쥐처럼 생긴 동물이었다. 포유류는 땅속에 있는 굴에 있다가 주고 밤에 안전할 때만 밖으로 나왔다. 해변에 아무 것도 없어 안전할 때만 후다닥 나와서 곤충을 잡아먹었다. 곤충은 땅에서 사는 동물이나 위협을 피해 안전하게 키가 큰 나무에 들어박혀서 사는 동물들이 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먹이었다.

많은 포유류는 무서운 공룡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진화하면서 몇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먼저, 포유류는 대부분 새끼를 낳음으로써 알이 다른 동물의 아침식사가 되는 것을 피했다. 포유류는 굴에서 나가는 것이 무서운 나머지 의 형태로 무료 개인 식당을 차려 둥지에서 나가지 않고도 밤낮없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새끼에게 먹이를 줄 수 있었다.

포유류는 도 길러 스스로 보온을 했다. 마지막으로, 포유류는 따뜻한 피가 흘러 밤에 추울 때도 밖에 나가 사냥을 할 수 있었고, 그만큼 포식자인 공룡으로부터 안전했다. 그래서 6550만 년 전에 재앙이 닥쳤을 때에도 이 작고 털이 난 동물들은 충돌에도, 충돌로 세상이 깜깜해졌을 때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먼지가 가라앉자 포유류는 괴물 같은 파충류에게 잡아먹힐 위험 없이 햇볕을 즐길 수 있었다. 갑자기 어둡고 무서운 감옥의 문이 활짝 열리고 모든 외출 금지 명령이 사라진 것 같았다. 는 공룡의 후손으로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지구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자 세상을 노랫소리로 가득 채웠다.

3. 새로운 새벽

풀을 먹는 보잘것없는 쥐였던 것이 어떻게 고기를 먹는 막강한 인간으로 변했을까?

300만 년 만에 들쥐만 했던 포유류가 개만큼이나 큰 동물로 진화했다.  그리고 500만 년 만에 온갖 형태와 크기의 포유류가 육지를 돌아다녔다. 공룡이 사라지자 육지는 비교적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 되었고, 자연은 여기에 맞추어 새로운 생명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를 모두 채울 수 있었다. 

5600만 년 전부터 3400만 년 전까지의 이 시기를 우리는 에오세라고 부른다. 에오세라는 말은 ‘새로운 새벽‘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왔다. 온갖 독특한 포유류들이 채울 수 있는 구석을 모두 채웠다.

에서는 사슴과 멧돼지, 곰, 코알라, 판다, 원숭이, 코끼리가 돌아다녔다. 초원에서는 소와 양, 얼룩말, 돼지, 말, 기린, 캥거루, 당나귀가 풀을 뜯었다. 에서는 토끼와 오소리, 고슴도치, 생쥐, 여우가 살았다.

강과 늪에서는 코뿔소와 코끼리, 비버, 수달, 하마가 첨벙거렸다. 사막에서는 낙타와 라마, 쥐가 터벅터벅 걸어다녔다. 바다에서는 고래와 돌고래, 바다표범, 해마가 헤엄을 쳤다. 공중에서는 박쥐가 날아다녔다.

4. 진화와 지각이동

이 새로운 통치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온갖 다양한 생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코끼리와 하마, 기린이 정말로 쥐와 생쥐, 박쥐 같은 공통의 조상에서 나왔을까? 고래와 돌고래가 정말로 코알라와 캥거루의 먼 친척일까?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구의 지각과 많은 관계가 있을까?

이때는 판게아가 이미 로라시아 대륙곤드와나 대륙이라는 두 개의 큰 대륙으로 갈라져 있었고, 지금은 이것들이 다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륙들로 쪼개지는 과정에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 유럽 대륙, 남북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극 대륙은 서서히 떠내려가 서로 떨어졌고, 서로 떨어지며서 저마다 동식물이라는 귀중한 짐을 싣고 갔다.

지각에 균열이 생기자 땅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용암의 분출은 유럽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밀어 이것들이 더욱 멀어지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6천만 년 동안 바다 밑에 있던 영국을 다시 밀어올려 약 4천만 년 전에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것도 이것과 같은 것이었다. 영국은 마치 거대한 잠수함이 숨을 쉬려고 떠오르듯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오랫동안 물속에 있던 역사는 영국의 육지와 해변이 왜 그렇게 많이 백악으로 덮여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층층이 쌓인 탄산칼슘은 바다의 미생물이 침전된 것이다. 물을 끓일 때마다 주전자 안에 조금씩 석회가 쌓이듯이 말이다.

5. 새로운 환경

대륙들이 서로 멀어지자 섬들이 탄생했고, 거기에 실린 동식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식물들은 온갖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 생물 다양성은 지리적 분리를 통해 증가한다.

포유류는 크게 나누어 세 부류로 진화했다. 그 가운데 오늘날의 포유류가 거의 모두 속해있는 두 부류는 판게아의 북쪽 부분이었던 로라시아 대륙에서 생겼고, 한 부류는 판게아의 남쪽 부분이었던 곤드와나 대륙에서 탄생했다.

곤드와나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은 단공류 뿐이다. 단공류는 매우 이상하다. 게다가 이것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정말로 기이하다.

1700년대 말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오리너구리가 발견되었을 때 전문가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리 주둥이를 가진 오리너구리를 누가 장난을 친 것으로 치부했다.

박물학자들은 반은 조류이고 반은 포유류인 이것이 어쩌면 비버의 몸에 오리 주둥이를 꿰매놓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가위로 꿰맨 자국을 찾으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1800년에는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것임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렇게 타고난 것이었다.

6. 단공류의 진화

오리너구리는 지금은 희귀동물이 되어 오스트레일리아 동부와 태즈메이니아에서만 발견된다. 몸은 갈색 털로 덮여 있고, 발에는 물갈퀴가 있으며, 커다란 주둥이는 고무처럼 탄력이 있다. 다리는 약간 밖으로 튀어나와 걸을 때 뒤뚱거린다. 오리너구리는 지금도 유일하게 알을 낳는 포유류 가운데 하나다.

오리너구리 같은 단공류는 포유류의 진화의 역사에서 초기에 갈라져 나왔고, 그때 이후로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 동물은 전기를 감지하는 주둥이를 가진 유일한 포유류로서도 유명하다. 오리너구리는 주둥이에 약 4만 개의 전기 감지기가 있어 이것으로 먹이를 찾는다. 마치 코가 손 같다.

오리너구리는 새끼에게 어미의 젖샘에서 분비되는 젖을 먹이니 당연히 포유류다. 1억1천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오리너구리 화석은 포유류의 진화 과정에서 초기에 나온 이 동물이 원래는 남아메리카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뒤뚱거리며 건너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두 땅덩어리가 완전히 쪼개져 두 개로 분리된 대륙이 되기 전의 일이다. 

약 4천만 년 전까지 지금은 98퍼센트가 두께 1마일이 넘는 얼음으로 덮여 있는 남극 대륙도 숲과 과실수가 있는 따뜻한 땅이었다. 동물들은 정기적으로 서로 연결된 땅덩어리들을 가로질러 돌아다녔고, 지금의 아르헨티나에서 남극 대륙을 거쳐 멀리 오스트레일리아 동부까지 가기도 했다. 약 8500만 년 전에는 걸어서 뉴질랜드도 갈 수 있었다. 그때는 아직 뉴질랜드가 남극 대륙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큰 떠돌이는 두 뻔째 부류의 포유류였다. 다른 것들과 완전히 다른 자기들만의 생활방식을 발전시킨 이들은 유대류였다. 오늘날 살아남은 유대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캥거루코알라다.

문명화된 곤충

‘진정으로 사회적’이라는 것은 생물이 무리지어 살며 자기들끼리 일을 분담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생물은 아는 것과 배운 것을 대대로 물려주고, 새끼들을 보살피고, 어떤 상황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한다.

1. 벌의 의사소통

여왕벌은 수벌의 무리와 생식 능력이 없는 암컷 일벌의 무리를 모두 지휘한다. 벌들은 춤이라는 언어를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벌들은 집에 돌아가면 춤을 추어 다른 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있는 곳을 가르쳐준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원무‘는 먹이가 집에서 50미터 안에 있다는 뜻이고, 상하나 좌우로 움직이는 ‘꼬리춤‘은 먹이가 있는 곳의 거리와 방향을 좀 더 자세히 알려준다. 단속적으로 불규칙하게 추는 춤도 있는데, 이것은 벌들이 벌집의 전반적 요건에 따라 모아야 하는 식량의 양을 늘릴 것인지 줄일 것인지를 결정할 때 쓴다.

벌은 벌집을 이전하는 일 같은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투표를 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발전된 집단이다. 벌들은 또 해마다 봄이 되면 무리의 반 정도가 여왕벌과 함께 무리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군체를 만들고, 남은 무리는 여왕벌의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해 경쟁에서 이긴 벌이 여왕벌이 되어 무리를 다스린다.

그런데 이주자들은 어디에 새 둥지를 틀어야 할까? 둥지를 트는 일은 미래의 안녕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둥지는 새와 같은 포식자들에게도 너무 노출되지 않아야 하고, 좋은 먹잇감으로부터도 너무 멀지 않아야 하며, 쉽게 물에 쓸려가거나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아야 한다.

보통 벌들은 100제곱킬로미터 안에서 후보지를 스무 곳이나 고르고, 시간의 90퍼센트가량을 최적지로 보이는 곳을 고르는 데 쓰는 것 같다. 이들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아주 효율적이다. 벌들은 저마다 투표할 기회가 있어, 군체는 미래의 생존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누린다.

벌들은 전체의 5퍼센트가량이 정찰을 나가 후보지를 찾고, 돌아와서는 춤을 이용해 공동체 전체에 후보지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러면 다른 벌들이 가서 후보지를 점검해보고 돌아와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 가장 길고 가장 강렬한 춤을 춘다.

약 2주 정도가 지나면 가장 강하고 힘찬 춤으로 표현된 곳이 낙점된다. 벌들은 발로 투표를 하고, 결정이 되면 떼를 지어 이동한다.

2. 개미의 의사소통

저 옛날부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한 동물은 벌들만이 아니다. 개미는 꿀벌과 같은 과에 속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개미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호박에 갇힌 종이며, 이것은 8천만 년도 더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미들의 문명에는 지구 최초의 학교와 노예제의 시초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심지어는 초기 형태의 컴퓨터처럼 행동하려는 기이한 시도까지 보인다. 개미집과 벌집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개미들은 춤을 추지 않는다. 대신 개미들은 다른 개미들이 맡을 수 있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개미는 먹을 것을 발견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닥에 길게 냄새 자국을 남겨 다른 개미들이 그 길을 따라 먹이가 있는 곳으로 가도록 인도한다. 개미는 또 대개는 해의 위치를 이용해 어떤 지형지물을 기억해두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개미들은 냄새를 좇아 먹이가 있는 곳으로 갈 때마다 계속 냄새를 더한다. 그러나 먹이를 모두 실어나르면 더 이상 냄새를 남기지 않아 냄새가 사라지면서 길도 영원히 사라진다. 개미들의 냄새는 다른 것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것에 짓눌려 죽으면 개미는 냄새를 선물로 남겨 주변에 있는 모든 개미에게 경보를 발령한다. 그러면 개미들을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으려고 사방으로 허둥지둥 달아난다.

개미들은 페로몬을 음식과 섞어서 건강과 영양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또 냄새를 통해 둥지에서 자신이 어떤 집단 또는 계급에 속하는지도 증명할 수 있다. 개미들의 문명에는 일종의 계급이 존재해, 계급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 여왕개미는 어떤 페로몬을 분비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일개미들이 새로운 여왕을 키우기 시작한다. 여왕이 죽을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3. 개미의 사회적 습성

우리가 아는 한 개미는 서로 가르치는 것을 배운 최초의 생물이기도 하다. 어린 개미가 둥지를 떠나 첫 나들이에 나서면, 나이든 개미가 어린 개미에게 먹이를 찾아서 가져오는 기술을 가르쳐준다. 개인교습을 하면서 나이든 개미는 어린 개미가 뒤따라올 수 있도록 걷는 속도를 늦추고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면 속도를 높인다.

이런 행동은 템노토락스 알비페니스라는 종에서 발견되었다. 개미들은 갈라진 틈이 있으면 개미 사슬을 만들어 다른 개미들이 그 위를 지날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마치 휴대용 배다리가 있는 군대 같다. 

개미들의 기발한 팀워크는 거의 한계를 모른다. 베짜기개미들은 나무에서 나뭇잎을 엮어 둥지를 짓는다. 가위개미들은 농사꾼이다. 이것들은 잎을 모아 둥지에 있는 밭에서 자라는 특별한 버섯에 먹이고, 버섯이 자라면 그것으로 식사를 한다. 사하라 사막 개미들은 눈에 띠는 지형지물이 없는 곳에서도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는 놀라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걸으면서 계속 발걸음 수를 셀 수 있어 돌아갈 때도 발걸음을 세어 집에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개미들의 세계에서도 팀워크에는 한계가 있다. 어쩐 종들은 다른 군체를 공격해서 먹고 살아, 개미들 사이에 대대적인 싸움이 벌어진다. 군체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터에서 수천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승자는 가위개미의 알과 애벌레의 형태로 전리품을 챙기고, 이것들을 길러서 일개미와 노예로 부려먹는다. 아마존 개미는 먹이를 모아서 스스로 먹고 살지 못해 포로로 잡은 개미들에게 전적으로 기대어 산다.

4. 흰개미의 사회

흰개미는 쥐라기에 공룡과 함께 나타나 백악기부터 계속 수가 불었다. 화석이 된 흰개미의 둥지들은 2억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생물은 작은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가장 큰 도시를 만들 수 있다.

흰개미들은 대개 개체수가 수백만 마리나 되는 군체에서 산다. 흰개미의 둥지는 군주제이지만, 왕이 하나 이상의 여왕과 함께 다스린다. 여왕은 임신하면 하루에 알을 수천 개 낳을 수 있다. 임신한 여왕이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어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면 일개미 수천 마리가 여왕을 들어올려 새로 지은 방에 밀어넣는다. 여왕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일개미들에게 특별한 형태의 젖을 준다.

일개미 흰개미들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을 한다. 이들은 먹이를 찾고, 창고를 짓고, 집을 유지 관리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왕국을 지킨다. 이들은 이동 식당 역할도 한다. 일개미들은 흰개미 왕국에서 유일하게 식물질 먹이를 소화할 수 있어, 다른 개미들에게 입이나 항문으로 소화된 먹이를 돌린다. 서로 돌보며 부양을 하는 것은 모든 진보된 문명의 특징이다. 

일개미들은 나무를 씹어서 부드럽게 만들고 그것에 흙과 똥을 섞어 둥지를 짓는다. 이것은 8천 년도 더 전에 초기 인간이 최초의 오두막과 집을 지을 때 썼던 초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벽은 아주 튼튼해, 때로는 이층버스만큼이나 높게 쌓아올릴 수도 있다.

흰개미 왕국에는 발달한 사회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최신 설비도 갖추어져 있다. 특수한 굴을 이용해 온도를 조절하는 냉난방장치도 있고, 물을 모으는 시스템도 있고, 버섯을 기르는 밭도 있다. 버섯은 흰개미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흰개미들은 대신 똥으로 버섯의 포자를 퍼뜨린다.

5. 흰개미 문명

흰개미 왕국의 병정개미들은 그들의 최대의 적인 개미들의 공격을 물리친다. 어떤 병정개미들은 혼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턱이 커서 다른 일개미들이 보살펴준다. 병정개미들은 을 뿜어 둥지를 지킨다. 어떤 병정개미들은 커다란 머리로 좁은 굴을 막아 개미의 공격을 막는다. 아예 문을 굳게 잠가버리는 것이다.

공격을 당하면 선두에서 싸우는 병정들 뒤에 예비부대가 줄을 서 있다가 앞에 있는 병정이 죽으면 곧바로 선두로 나선다. 그래도 방어벽을 뚫고 개미들이 들어오면 병정개미들이 줄을 서서 개미들에게 독액을 쏘고, 그들 뒤에서 다른 병정개미들이 뚫린 구멍을 보수한다.

구멍이 막히면 선두에서 용감히 싸운 흰개미들은 도망 갈 길이 없다. 이들의 운명은 다른 흰개미들을 위해 죽는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 덕분에 흰개미들은 개미들에게 전멸되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흰개미 문명은 아주 높은 수준의 집단 지성을 보여준다. 나침반흰개미는 아주 키가 큰 둥지를 짓는데, 둥지가 뜨거운 공기의 흐름이 정교하게 연결된 굴을 통과할 수 있도록 남북을 향해 있다. 이들이 키우는 버섯이 잘 자라려면 온도 조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문명화된 곤충의 이야기는 자주 거론되지 않지만, 그들의 세계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꿀벌이 과수원에서 가루받이를 해주고 우리에게 꿀도 만들어 주듯이 그것들은 때로 인간의 통제 아래 있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흰개미를 미래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본다. 종이 한 장으로 수소 2리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흰개미들의 효율적 발효 과정 때문이다. 하지만 흰개미들은 나무 구조물에 깊은 굴을 팔 수도 있어 잘못하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흰개미의 명성이 어떠하든 이 생물의 조직력과 지능, 동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은 바로 우닐 인간이 문명화되었다고 부르는 것들의 특징들이다.

새로운 생명의 출현 – 곤충

시조새는 약 1억4천만 년 전에 살았고, 현대 조류의 조상이었다. 시조새는 날기에 적합한 깃털을 가진 동물로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동물이다.

1. 시조새

새는 어디서 왔을까? 독일 화석 사냥꾼 헤르만 폰마이어는 1861년에 이 질문의 답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최초의 새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그것을 시조새라고 불렀다.

시조새는 크기가 오늘날의 까치만 했고, 누가 봐도 새처럼 생겼다. 깃털도 오늘날의 새처럼 나 있었고, 날 수 있게 공기역학적 형상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발톱도 새의 발톱처럼 갈고리 모양인 데다 새의 가슴뼈 앞에 있는 V자 모양의 창사골까지 있었다.

폰 마이어의 화석은 약 1억4천만 년 전, 그러니까 최초의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의 것이다. 시조새의 화석은 그 뒤에도 독일에 있는 졸른호펜이라는 지방에서 10점이 더 발견되었다. 그러나 수수께끼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시조새의 조상은 무었이고, 시조새는 어떻게 나는 것을 배웠을까?

이것은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고, 결국 새는 공룡 같은 파충류도 아니고 사람 같은 포유류도 아닌 독자적인 것으로 분류되었다. 새는 그냥 새였던 것이다.

2. 데이노니쿠스

약 30년 전에 수수께끼를 푸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미국 고생물학자 존 오스트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화석 사냥꾼이었던 오스니얼 마시가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피바디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인상적인 화석 수집품을 책임지고 있던 교수였다. 

오스트롬은 공룡이 파충류보다 조류에 가깝다고 확신했고, 1964년에 몬태나 남부에서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화석을 수백 점 발견했다. 데이노니쿠스였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짐승이었다. 아주 움직임이 빠르고 활동적인 육식조였다.

발 뒤꿈치에 있는 무시무시한 갈고리 발톱으로 먹이를 찔러서 죽이는 방식으로 먹이를 잡았고, 강한 꼬리는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해주어 회전 능력과 뛰어오르고 달리고 먹이를 사정없이 발로 차서 기절시키는 힘이 뛰어났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공룡이 어마어마하게 큰 몸집 탓에 터벅터벅 느리게 걷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화석은 공룡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아마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 동물이었을 것이고, 그럴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을까? 비행은 그 전에도 이미 여러 번 나타났다. 처음 난 것은 잠자리였고, 익룡 같은 파충류도 나는 기술을 습득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느 것도 깃털이라는 창의적인 발명품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조류임을 증명해주는 보증서 같은 것 말이다.

3. 폼페이 공룡 무덤

1970년에 오스트롬은 시조새가 최초로 알려진 조류의 화석이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오스트롬은 시조새를 다시 조사했다. 데이노니쿠스는 앞다리의 발목이 위아래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데 이로써 데이노니쿠스가 시조새의 발목과 똑같은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76년에 오스트롬은 아주 놀라운 주장을 했다. 새가 공룡의 살아 있는 후손이라는 것이었다. 오스트롬의 생각은 오랫동안 흥미롭지만 엉뚱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어쨌거나 공룡은 6500만 년도 더 전에 멸종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이를테면 공룡도 깃털이 있었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는 조류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서 유래했는지도 알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에 화석 전문가들이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석 발견이랄 수 있는 것을 중국의 북쪽 끝에 있는 랴오닝 성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폼페이 공룡 무덤‘이라는 것을 발굴했는데, 그 안에는 말 그대로 수백만 종의 식물과 곤충, 벌레, 물고기, 개구리, 거북, 도마뱀, 포유류, 조류, 공룡이 파묻혀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약 1억3천만 년 전에 근처에 있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쏟아진 뜨거운 화산재의 화산먼지에 파묻혀 질식사한 것들이었다. 물가에서 조용히 풀을 뜯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리고 어찌나 빨리 파묻였는지 공기 중의 산소까지 무덤에 갇혀, 이것들과 이것들의 부드러운 조직이 바로 몇 년 전에 발견될 때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4. 공룡의 깃털

1995년에 중국 과학자들은 어떤 공룡들은 정말로 솜털 같은 깃털이 있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주는 화석을 발굴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시노사우롭테릭스였다. 이것은 길이가 1.5미터밖에 안 되고 다리가 두 개인 작은 공룡이었다. 고기를 먹는 공룡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턱과 납작한 이빨을 가지고 있었지만, 발톱은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었고, 뒷다리는 이것이 아주 빠르게 달리는 동물이었음을 말해주었다.

마침내 새가 어디서 왔는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정말로 가장 마지막에 살아남은 공룡이었다. 그러나 아직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여럿 있었다. 시노사우롭테릭스의 깃털은 몸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데 필요한 공기 역학적 특징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노사우롭테릭스의 깃털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어쩌면 깃털이 원래 날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중에야 어떤 희한한 일이나 우연에 의해 그러한 목적에 적합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작은 공룡들이 보온을 위해, 일종의 단열재로서 깃털을 개발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깃털이 모든 종류의 공룡에 공통적으로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최근에야 밝혀진 것은 깃털은 보통 화석으로 보존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에서 발굴된 수많은 화석과 뼈 속에서 많은 공룡새가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2000년에 발굴된 솜털 달린 육식조 데이브를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가는 깃털에 덮여 있다. 그렇지만 이런 깃털이 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었다.

5. 새의 날개

새를 둘러싼 수수께끼의 마지막 부분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새들은 언제 어떻게 보온용 깃털을 날기 좋은 날개로 개조했을까? 새들은 높은 곳에서 먹이를 찾다가 입맛을 당기는 것이 발견되면 나무에서 뛰어내려 먹이를 덮쳤을까? 아니면 땅에서 다른 굶주린 짐승을 피해 달아나다가 날개를 퍼덕이며 솟아올랐을까?

이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최근에 중국의 ‘폼페이’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화석 미트로람토르는 새들이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렸을거라는 설을 뒷받침해준다. 그것은 날기에 적합한 깃털도 가지고 있고 나무를 기어오르기에 적합한 갈고리 모양의 발톱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기에 적합한 깃털이 언제 어떻게 진화되어 나왔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며,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마 여전히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암석들 속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약 1억년 전쯤 되는 시대에 처음으로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문명이 아니라 말벌과 말벌의 후손인 꿀벌과 개미 같은 곤충의 문명이다. 이때는 개미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로서, 오히려 갑충과 관계있는 흰개미도 있었다. 바로 이 생물들로부터 새로운, 훨씬 진보된 사회적 생활방식이 나왔고, 이것이 그후 지구상에 나타난 모든 문명의 원형이 되었다.

6. 곤충의 사회

말벌은 최초의 공룡과 함께 지구상에 나타났다. 그러니까 거슬러 올라가면 쥐라기에 나타났지만, 꽃이 나타난 후인 백악기 초기에 가장 빠르게 진화했다. 많은 말벌은 혼자 살았다. 그러나 일부는 간단한 사회적 습성을 드러냈고, 이러한 습성은 꿀벌과 개미들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종이는 수천만 년 전에 사회생활을 하는 말벌들이 처음 만들었다. 여왕 말벌은 겨울에 겨울잠을 자고 초봄에 나와 적당한 서식지를 찾는다. 적당한 서식지가 발견되면 먼저 나무의 섬유질을 이용해 종이 둥지를 만드는데, 여왕 말벌은 나무의 섬유질을 씹어서 입 속의 침과 섞어 부드럽게 만든다.

여왕 말벌이 만드는 종이는 벌집의 방을 만드는 데 쓰이고, 방을 하나씩 차지한 알은 자라서 암컷 일벌이 된다. 일벌은 알에서 깨면 여왕 대신 둥지를 마저 짓는다. 처음 군체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을 제외하면 여왕 말벌은 무리에서 특별한 지위에 있지 않는다. 이런 군체는 질서가 있는 곤충 사회에서도 가장 기본적 형태다.

최초의 꽃들과 함께 나타난 말벌의 후손인 꿀벌은 다른 곤충들을 먹고 살다가 꽃가루와 꽃꿀로 식사를 대체했다. 오늘날 살아 있는 꿀벌의 종류는 약 2만 종이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고도로 사회적인 집단을 이루어, 자연의 문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깊이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생명의 출현 – 꽃

어떻게 지구 최초의 꽃들이 날개 달린 새들과 함께 번성하고, 새로운 사회적 곤충들이 자연 최최의 문명을 건설했을까?

1. 꽃 화석의 발견

찰스 다윈은 1879년에 식물학자인 친구 조셉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꽃이 피는 식물들이 화석 기록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썼다.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그럴듯하게 설명한 사람은 없다. 생명의 재료가 운석을 타고 외계에서 지구로 왔다는 좀 엉뚱한 이론과 달리 꽃도 그랬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약 1억3천만 년 전에 세계 최초의 꽃 화석들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다. 

백악기 초기 공룡은 여전히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하나의 거대한 대륙 판게아는 두 개의 거대한 땅덩어리로 갈라지는 과정에 있어, 북쪽으로 이동하는 로라시아 대륙과 남쪽으로 이동하는 곤드와나 대륙 사이에 드넓은 바다, 테티스 해가 생기고 있었다.

어떤 전문가들은 꽃이 1억3천만 년 전쯤이 아니라 그보다 수백만 년 전인 2억5천만 년 전에 나타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화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또 어떤 전문가들은 몇 단계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잇따라 일어나 꽃들이 암석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꽃이 약 1억3천만 년 전에 나타난 사실은 분명하며, 아직은 꽃이 그보다 오래전에 살았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2. 꽃을 통한 번식

꽃이 피는 풀과 나무는 지구의 생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만일 꽃이 피는 풀과 나무가 없었다면 오늘날 생물은 정말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인간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먹는 음식의 75퍼센트 이상이 꽃이 피는 풀과 나무에서 나온다. 지구는 더 이상 끊임없이 이어지는 갈색과 녹색, 청색에 지배되지 않았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빨강, 노랑, 주황, 자주, 분홍 꽃이 폈다.

은 많은 풀과 나무가 번식하기 위해 쓰는 강력한 장치다. 꽃을 통해 그것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 진화는 첫 번째 꽃들이 나타났을 때 최절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진화가 수정을 돕고 씨를 퍼뜨리기 위해 생각해낸 이 장치야말로 가장 눈부신 설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많은 풀과 나무는 오래된 나무들이 가장 잘 아는 전략, 이미 시도해보고 시험해봤기에 믿을 만한 전략을 써서 수정을 하고 씨를 퍼뜨렸다. 친구를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 것이다.

꽃은 많은 풀과 나무가 지구 방방곡곡으로 퍼질 수 있도록 도와줄 많은 우군을 모을 수 있도록 했다. 어쩌면 꿀벌과 나방, 나비 같은 나는 곤충이 이렇게 꽃이 피었을 때 처음 모습을 나타낸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3. 공진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꽃이 먼저냐 호박벌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훨씬 어렵다. 그러나 아마 둘이 함께 진화했다고 보는 게 가장 맞을 것이다. 이것을 공진화라고 하는데, 꽃에게 벌이 필요한 만큼이나 벌에게도 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꽃과 벌은 서로 상대방이 더 잘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개발했다. 둘 다 협력하면 얻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한쪽은 먹을 것을 제공하고 한쪽은 운송 수단을 제공한 것이다.

암꽃과 수꽃의 유전자는 딱정벌레나 꿀벌 같은 꽃가루 매개자의 도움으로 자기들만의 독특한 유전자 정보를 지닌 새로운 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꽃은 이제 아주 다양한 보상책을 마련해 육지와 하늘에 사는 동물들이 꽃가루와 씨를 다른 곳으로 실어가도록 했다.

열매는 꽃에서 암컷에 해당하는 부분, 즉 씨방이다. 씨방은 수정이 되면 모양과 형태를 바꾸어 씨가 흩어지기 쉽도록 해준다. 이 씨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도 하고 물에 실려 가기도 하고 동물의 털에 달라붙어서 먼 길을 가기도 한다. 그래서 부드러운 솜털이 달린 흰 낙하산 같은 민들레 홀씨는 열매다.떡갈나무의 도토리나 가시 돋친 밤송이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운송 수단은 바로 먹을 수 있게 되는 음식에 씨를 묻은 것이다. 그러면 동물이 지나가다가 한 입 먹고 하루나 이틀 소화시킨 다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똥을 눠 소화되지 않은 씨를 여기저기에 퍼뜨릴 것이고, 씨가 자랄 수 있도록 선물로 거름까지 선사할 것이다. 씨는 아주 강하게 만들어졌다. 씨는 속이 뒤집힐 정도로 불쾌한 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4. 씨의 이동

물론 모든 열매가 이런 식으로 먹히는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코코야자나무 같은 나무들은 커다란 씨가 물 위에 떠서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까지 수천 마일을 떠내려가도록 하는 전략을 개발했다. 열매가 폭죽처럼 터져 씨가 사방으로 수백 미터까지 퍼지는 샌드박스트리라는 별난 나무도 있다.

목화 열매는 씨를 퍼뜨리는 방법으로 동물의 살갗에 달라붙는 섬유질을 만들어낸. 견과류겨울 식량을 비축해두는 동물들이 멀리 가지고 가서 먹을 수 있게 된 씨다. 이런 동물은 거의 언제나 일부는 먹지 않고 남겨, 씨들이 새로운 곳에서 싹을 틔울 수 있게 해준다.

열매 이전에는 바람이 있었다. 바람은 자연이 꽃가루를 퍼뜨리고 씨와 홀씨를 흩뜨리는 가장 전통적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도 바람은 많은 꽃이 선호하는 방법이며, 특히 풀들이 그렇다. 

민들레는 아주 작은 낙하산처럼 생긴 홀씨가 산들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유럽 단풍나무도 씨에 달린 헬리콥터 같은 날개가 바람을 타기에 좋게 생겼다. 바람을 이용해 수분을 하고 씨를 퍼뜨리는 꽃들은 동물이나 곤충을 유혹할 필요가 없어 애써 눈에 띄게 큰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런 꽃들은 꽃잎을 작고 수수하게 만들어 에너지를 아낀다.

5. 생존을 위한 변화

백악기에는 외떡잎식물이라는 중요한 식물군이 새롭게 나타났다. 쌍떡잎식물인 대부분의 다른 식물과 달리 외떡잎식물은 거꾸로 자라는 기발한 술책을 생각해냈다. 외떡잎식물의 잎은, 가장 파릇파릇하고 가장 어린 순이 언제나 가지 끝에서 나는 침엽수처럼 새로 자라는 부분이 잎의 끝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가운데 있고 대개는 숨어있는 눈에서 자라나온다. 

이런 새로운 설계는 즉각 성공을 거두었다. 공룡이 지나가다 잎을 뜯어먹어도 가장 최근에 자란 부분은 바닥에 안전하게 숨어 있어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은 이런 설계를 이용해 동물이 뜯어먹어도 금방 원상을 회복하는 외떡잎식물이다.

사실 풀은 오히려 동물이 뜯어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줄기가 강해지면서도 새롭게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훼손되지 않기 때문이다. 풀은 끝눈이라고 하는 잎눈이 늘 땅 밑에 있어 동물이나 다른 것들로부터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

이런 설계가 거둔 성공은 눈부셨다. 이제 풀밭은 다른 식물이 지구의 표면을 덮은 면적을 모두 합한 것만큼이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백악기 말기에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나무도 나타났다.

그 전에 나타난 소철이나 침엽수와 달리 외떡잎식물인 야자나무는 비늘에 덮인 두꺼운 줄기 꼭대기에 있는 눈에서 새싹이 자라난다. 오늘날 살아 있는 야자나무는 그 종류가 2600종이 넘는다. 

가장 오래된 야자나무 화석은 니파야자의 화석으로 약 1억1200만 년 전의 것이다. 이것은 좀 특별한데, 왜나하면 줄기와 뿌리가 습지나 강변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번식하는 방법도 기발하다. 수영하는 나무인 이 나파야자는 뿌리로 한데 뭉쳐 있다가 조류와 물살을 이용해 흩어져 동물 몇 마리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섬이 되고, 이것에 실린 동물들은 이것을 뗏목 삼아 이리저리 떠다닌다.

공룡의 멸종

6550만 년 전 지구에 치명적인 운석이 떨어져 대멸종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모든 종 가운데 50~80퍼센트가 전멸했고, 거기에는 공룡도 포함되어 있었다.

1. 대멸종

공룡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암석들 자체만으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공룡은 1억6천만 년 넘게 육상생활을 지배했지만 약 6550만 년 전부터는 또 한 번 일어난 대멸종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공룡 화석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전멸한 것은 공룡만이 아니었다. 하늘을 나는 파충류 익룡도 모두 사라졌고, 바다 파충류도 어떻게 용케 살아남은 바다 거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오늘날의 문어와 오징어의 친척인 신기한 나선형 화석 암모나이트도 종적을 감추었다. 포유류와 나무와 풀도 많은 종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양서류는 가볍게 위기를 피한 것 같고, 뼈가 단단한 물고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충격에서 살아남는 데는 작은 것이 유리했다. 길이가 1미터가 넘는 것은 모두 큰 곤경에 빠졌다. 그런데 왜 악어는 살아남았는데 도마뱀 같은 공룡은 모두 죽었을까? 왜 뼈가 단단한 물고기는 계속 살았는데 암모나이트는 죽었을까? 전문가들은 이때 모든 동식물 가운데 약 50퍼센트에서 80퍼센트가 전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6550만 년 전이면 백악기가 끝나고 제3기가 시작될 때다. 이제는 대기 속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져 날씨가 따뜻해졌고, 하나의 거대한 대륙 판게아가 점점 쪼개지면서 비가 내리는 양상도 달라지고 있었다. 

풀을 먹는 공룡들의 전통적 번식지가 분리되었고, 새로운 바다 대서양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대륙과 떼어놓기 시작했다. 대륙들이 움직이면서 늪과 강들이 한때는 먹이를 먹는 곳이었던 거대한 땅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을 만들었다.

2.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이제 서로 분리되자 큰 무리를 지어 살던 공룡들은 줄어드는 땅을 놓고 서로 경쟁해야 했다. 풀을 먹는 공룡들의 개체수가 줄어들자 고기를 먹는 공룡들도 먹을 것이 줄어 공룡 전체가 위태로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공룡들이 모두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든, 그 일은 자연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빨리 일어났다. 몇 세대에 걸쳐서 조금씩 형태를 변화시키며 급변하는 지구의 환경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

지구상의 생물은 생명이 없는 단단한 바위 덩어리 위에 엷게 펼쳐진 예민한 대기층에서 생존한다. 6550만 년 전에 시속 약 7만 마일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한 6마일 너비의 소행성에게도 지구는 바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밝게 빛나는 청록색 점이 날마다 점점 더 커졌을 것이다. 치명적인 암석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검은 덩어리가 마침내 접근 했을 때, 행성 지구는 텅 빈 우주의 검은 바다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 같았을 것이다.

기이한 불운에 이끌려 죽음의 여행길에 올랐던 소행성의 종말은 기대한 만큼 장관이었을 것이다. 지구가 외계에서 가끔식 우연히 던지는 커브볼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행성, 운석, 혜성 같은 것들이 늘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는 두꺼운 대기를 가르며 들어오는 순간 지구의 두껍고 무거운 공기와 충돌해 불타 사라진다.

그러나 엄청나게 크다면 내려오다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마침내 멋모르고 있던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 힘은 핵폭탄 수천 개가 한꺼번에 터진 것과 같아, 무엇이든 모두 가루로 만들어 물집이 생길 정도로 뜨겁고 치명적인 독가스의 구름으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3. 재난 속 지구

지구는 직접적인 충돌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박살나 영향권 밖에서도 경련을 했다. 높이가 수백 피트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해일이 해안에서 해안까지 온 세상을 덮쳤다. 쓰나미는 육지와 바다 양쪽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엄청난 파괴를 가져왔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영향권 바로 밑에 있던 암석은 아주 독한 물질인 유황을 다량 함유했고, 이로 인해 더 큰 불행이 닥쳤다. 엄청난 충돌로 유독한 유황 먼지가 온 세상에 퍼져, 공기 호흡을 하는 것들은 모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참화를 겪어야 했다.

충돌하는 소리와 충돌하는 광경에 귀가 멀고 눈이 먼 생물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폭발로 죽지 않은 것들도 세차게 밀려드는 물결에 많이 빠져 죽었을 것이다. 아마 1년 동안이나 지구가 무겁고 매캐한 구름에 둘러싸여 햇빛이 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은 어둠에 싸이고 바다는 수온이 급상승했다.

그동안 지구의 다른 쪽에서는 더 많은 재난이 일어났다. 현재의 인도에서 잇따라 화산이 폭발했다. 그 규모도 엄청났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 소행성이 몇 조각으로 쪼개져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엄청난 화산 폭발에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용암이 100만 제곱마일이 넘는 곳을 덮쳤고, 이는 지구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화재를 일으켜 봄베이 근처에 오늘날 데칸 트랩으로 알려진 드넓은 대지를 새로 만들었다.

중독된 물과 공기, 이루 말할 수 없이 뜨거운 열, 숨이 막힐 정도로 짙은 먼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풀이 자라고 꽃이 피는 것을 막았다. 이는 영향권 밖에 있던 지역에서도 멸종을 불러왔다. 마치 거의 3억 년 전인 석탄기 초기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4. 대멸종의 생존자

2억5200만 년 전에 페름기의 대멸종이 일어난 후 잠시 세계를 지배한 것은 진균류였다. 이번에는 그러한 영광이 양치류에게 돌아갔다. 양치류는 홀씨가 가볍고 쉽게 파괴되지 않아 폐허가 된 지구에서 최초로 널리 퍼져 번성할 수 있는 생물이 되었다.

다름 아닌 바람의 힘에 의존한다는 것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말이었고, 따라서 지구의 죽음에 관계없이 어디든지 가서 자랄 수 있는 곳이면 가장 살기 힘들고 단단하며 뜨겁고 검은 땅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는 최근에야 제대로 조각이 맞추어졌다. 1970년대 말까지는 아무도 공룡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합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지론이 있었다. 화산? 질병? 심지어 가까운 초신성이 폭발해 지구에 치명타를 안겼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수께끼는 과학자들이 암석에서 아주 드문 물질의 흔적을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찾은 뒤에야 풀렸다.

1970년대에 미국 지질학자 월터 알바레스는 화산이 고대 로마인의 정착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려고 이탈리아의 화산 지대에서 암석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장의 변화가 있었다는 흔적을 찾으려고 했는데, 이는 그것을 단서로 암석의 절대 나이를 추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는 그를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구비오라는 소도시로 데려갔다. 구비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로마의 원형극장이 남아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북쪽에서부터 이 도시를 지나면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화강암 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곳은 한때 백악기 해저의 일부였는데, 아프리카 판이 느리지만 가차 없이 지중해를 향해 북쪽으로 나아가면서 수백만 년 전에 밀려 올라가 산이 된 곳이다. 그리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암석이 점점 젊어져, 전문가들이 백악기 말기와 그 뒤에 일어난 재난에 관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 수 있게 해준다.

6. 암석 연구

구비오에서 1킬로미터쯤 가면 암석이 연분홍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스칼리아 로사 층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확히 6550만 년 전, 공룡 화석이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의 것이다. 이 암석은 화석 사냥꾼들에게는 잔칫상과 같다.

수없이 많은 암모나이트가 수없이 많은 방상층이라는 미세한 플랑크톤과 뒤섞여 있다. 그런데 방산층은 재빨리 종을 바꾸는 것으로 유명해, 전문가들에게 연구하는 암석의 나이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정확히 6550만 년 전을 경계로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것은 약 1센티미터의 두께로 띠를 이루고 있는 점토층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위에는 거의 생물이 존재한 흔적이 없다. 그러나 거기서 몇 미터 위를 보면 바다 생물의 뼈가 다시 나타나 정상으로 돌아갔음을 말해준다. 

알바레스는 암석을 분석해 아주 드문 금속인 이리듐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실험실에 돌아와 그는 이 점토층에는 이리듐의 농도가 주변에서 발견한 암석보다 몇 백 배나 높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물리학자로서 노벨상을 받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리듐은 지구에는 아주 드물지만 운석에는 정말 흔하다.  그리고 지구에서 발견되는 이리듐의 종류와 알바레스가 이탈리아의 점토층에서 발견한 이리듐의 종류가 달랐고, 이로써 이리듐이 외계의 물체에서 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7. 대멸종의 증명

알바레스와 그의 아버지는 1980년에 연구 결과를 과학 잡지에 발표했다. 그 뒤에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알바레스가 발견한 이리듐과 종류가 같은 것이 역시 비슷하게 아주 많이 들어 있는 점토층이 발견되었고, 이는 지구 밖에서 온 물체가 지구와 충돌했음을 말해준다. 

알바레스 팀은 충돌이 일어났다는 물리적 증거, 즉 크레이터 같은 것을 찾는 데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지구 지각 관의 운동으로 아주 오래전에 지각이 뒤섞여 이제는 그런 증거들이 모두 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에 미국의 연구생 앨런 힐데브란트가 멕시코 동부에서 암석을 조사하다가 행운을 만났다. 알바레스가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점토층을 발견했는데, 이번에는 유리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충격을 받았다 하여 충격 석영이라 불리는 이것은 어마어마하게 높은 온도와 압력에 의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지금까지 충격 석영은 핵폭탄 실험장과 운석의 충돌로 생긴 크레이터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충격 석영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힐데브란트는 자신의 대학 교수와 의논한 끝에 자신이 충격 석영을 발견한 곳에서 600마일 안에 유성이 충돌한 곳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위성사진의 발달로 너비가 100마일에 이르는 치크수럽 크레이터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 번 이상 일어난 운석의 충돌로 공룡이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