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정복자들

어떻게 인간의 자연계에 대한 이해가 철학과 법률로 표현되기 시작하고 또 그것이 정복을 통해 동양과 서양 전체로 퍼졌을까?

1. 자연의 지배자

그리스 철학자들은 점차 지구상에 사는 것들의 운명을 저 먼 산꼭대기에서 좌지우지하는 신 따위는 없다는 급진적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지적 능력으로 우주의 법칙을 해독해 모든 자연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인간 자신이었다.

그런 사상가들 가운데 최고의 사상가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의 광범위한 저작은 인간 영혼의 본성에 관한 사색에서부터 우주의 물리학까지, 심지어는 날씨까지 온갖 것을 다루었다.

그러나 2천 년도 더 뒤의 찰스 다윈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자연계에 있었다. 그는 젊어서 몇 년 동안을 그리스의 비옥한 작은 섬 레스보스에서 지냈다. 거기서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같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이용해 섬의 자연 생태계를 꼼꼼하게 관찰했다.

동물과 식물을 연구해 분류하고, 동물과 식물의 행동을 조사하고, 동물과 식믈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에 주목했다. 기원전 335년경에는 마케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며 아테네에 정착했고, 여기서 철학을 공부하는 학교를 세우고 그것을 리케이온이라고 불렀다.

2. 자연의 법칙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이나 탈레스 같은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 배운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자연계에서 관찰한 모든 것을 결합했다. 그리하여 모든 현실의 밑바탕에는 일련의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이 있어, 지구상의 생명과 관계있는 모든 것과 우주의 본성을, 인간의 정치에서 날씨까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가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이므로 충분히 시간을 들여 관심을 기울이면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대 과학의 선조라고 할 만한 유일한 그리스 철학자는 아니지만, 분명 가장 유명한 철학자였으며, 그의 저작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이 되었다.

“꼭두각시 인형 놀이를 하는 사람이 줄 하나를 잡아당겨 목과 손, 어깨, 눈이 어떤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도록 하듯이, 신성한 자연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것을 간단히 움직여 바로 다음에 있는 것에 자신의 힘을 전달해 이것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자연의 힘이 모든 것에 전달되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다른 것에 의해 움직이면 순차적으로 이것이 또 다른 것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저마다 자신의 체질에 따라 움직이지 모두 똑같은 과정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인 합리적 세계관은 우주가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와 같은 것이라면 그러한 우주에서 예전의 변덕스러운 신들에게는 어떤 자리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연의 법칙 자체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신성한 것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신이 우리에게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수정이나 변경을 허락하지 않는 법칙이 판에 새겨진 것들보다 훨씬 낫고 훨씬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호모 사피엔스와 자연계가 맺은 관계의 역사를 통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보다도 인류에게 탐구하고 발견하고 배울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그런 통찰도 어떤 명석한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거나 돈 많은 후원자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면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지닌 잠재력을 펼치려면, 그것을 널리 퍼뜨려 되도록 많은 인간의 문화가 인간 두뇌의 힘을 자연의 힘에 발휘하도록 할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운 좋게도 때마침 그런 일을 하기에 딱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생이었던 마케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스였다. 어쩌면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에 불을 질러 세상에 있는 것을 모두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제국을 정복하겠다는 가슴 벅찬 결심을 하도록 한 것은 그의 위대한 스승의 자연계에 대한 열정이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2세는 부케팔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말을 가지고 있었는데, 궁중에서 아무도 그 말을 길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 살밖에 안 된 알렉산드로스가 말을 달래 해가 비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도록 했더니 더 이상 제 그림자에 놀라 겁을 먹지 않고 순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해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을 보고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가 예언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 아들아, 네게 걸맞은 왕국을 찾아라. 마케도니아는 네게 너무 작다.”

얼마 뒤 알렉산드로스는 필리포스가 거둔 군사적 승리 덕분에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군사적 모험으로 손꼽히는 전투에 나설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4. 그리스의 통일

기원전 338년에 필리포스의 군은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아주 기동력이 뛰어난 알렉산드로스의 기병대의 도움으로 아테네와 테베를 포함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동맹 세력을 격파했다. 필리포스는 이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그리스 전체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의 계획은 하나로 통일된 그리스 군을 창설해 서로 싸우는 그리스 도시들을 통일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의 숙적이었던 페르시아로 진군해 5세기에 전쟁에서 패한 것을 설욕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가 불필요하게 아테네를 약탈한 것에 앙갚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원전 336년 10월에 필리포스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가 출발하기 얼마 전에 딸 클레오파트라가 결혼해 잔치를 벌이고 있었는데, 잔치 중에 아이가이의 극장에 들어가다가 그만 자신을 호위하던 파우사니아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파우사니아스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연인들끼리의 사소한 말다툼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여럿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그런데 왕위에 오른 지 2년도 안되어 테베에서 새 마케도니아 왕에게 도전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알렉산드로스는 왕으로서 당당하게 완강히 반항하는 도시를 완전히 짓밟고 집만 한 채 달랑 남겨 놓았다. 좋아하는 시인 핀다로스의 집이었다.

핀다로스는 그의 선조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1세를 찬미하는 시를 여러 편 지은 시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테베를 완전히 파괴한 뒤 테베 사람 전체를 노예로 삼아 보란 듯이 자신의 무자비함을 드러냈다. 그때부터는 마케도니아에 적대하는 호전적 통치자 데모스테네스가 통치하던 다테네마저 두려운 나머지 알렉산드로스의 권의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5. 헬레니즘 제국

그 뒤 30년 동안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군 4만2천 명을 이끌고 페르아와 이집트를 지나 인도까지 갔다. 터키 중앙에 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 풀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터키 중앙에 있던 고르디우스라는 도시에는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다음번 아시아 왕이 될 거라는 전설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3년에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 3세를 대파하고, 그의 어머니와 아내, 두 딸을 포로로 잡고 많은 재물을 얻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음에는 지중해 연안으로 진군해 티레라는 도시를 포위하고 7개월 만에 정복해 이집트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집트에서는 페르시아의 세력이 기운 덕분에 해방자로 환영을 받고 기원전 332년에 파라오로 선언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본떠 모든 도시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알렉산드리아를 세우고 이집트와 그리스를 잇는 항구도시로 삼았다. 알렉산드리아는 갈수록 강성해진 그의 새로운 헬레니즘 제국의 해양 중심축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아니었다. 18개월 만에 이집트를 떠나 페르시아로 다시 진군했다. 페르시아에서 다시 다리우스와 맞붙었고, 이번에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그를 무찔렀다. 페르시아에서 다시 다리우스와 맞붙었고, 이번에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그를 무찔렀다. 

페르시아 왕은 전장에서 달아났으나 나중에 메디아의 산에서 자신의 군대에게 살해되었다. 이제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전체를 정복할 길이 열렸다. 그는 먼저 바빌론으로 진군했고, 이어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수사로, 마지막으로 페르시아 왕들의 고향인 거대한 페르세폴리스로 쳐들어갔다. 

그가 거기서 몇 개월 동안 쉬었는데, 그 뒤 도시가 완전히 불탔다.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고 우연히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수많은 보물을 잃었고, 그 가운데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마련된 소가죽에 황금 잉크로 썼다”는 조로아스터교의 <아베스타>같은 귀중한 자료와 문서도 있었다. 

6. 7대 불가사의

다리우스의 죽음과 이집트, 페르시아의 복종으로 알렉산드로스의 군사적 목표는 달성되었지만, 새로운 제국의 군대에서 자기를 위해 싸우도록 용병을 모았다. 3년 동안 군사 작전에 들어가 스키타이와 아프가니스탄을 복속시켰고 인더스 강에서 치른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인도의 포루스 왕을 물리쳤다.

페르시아로 돌아간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을 융합해 하나의 문화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알렉산드로스는 모범을 보이려고 페르시아 공주인 다리우스 3세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 사이의 적대감은 여전히 깊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그의 제국은 그가 죽고 얼마 안 되어 네 개의 왕국으로 쪼개졌다. 그러나 그의 정복으로 그리스어가 중동과 이집트 전체에서 쓰이는 공용어가 되었다.

군인에서 상인과 장인, 과학자와 철학자까지 수많은 그리스 사람이 국외로 나갔고, 그러면서 그들의 실험적 세계관도 함께 퍼졌다.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다섯 가지가 그리스 사람들의 작품이고, 그것들은 저마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이들의 확신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