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명의 시작

어떻게 동방에서 쌀과 비단, 철이라는 풍부한 자원 덕분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강력한 인류 문명이 발생했을까?

1. 중국 문명의 토대

만일 지구상에 존재한 인류 문명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견고한 문명에 금메달을 수여한다면, 진정으로 그것을 받을 만한 후보는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이다.

현대 중국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막강하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13억 인구가 사는 곳이다. 중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아마 역사상 어떤 나라보다도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킨 발명과 발견을 많이 한 것을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중국은 과거제도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용광로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도 모두 중국에서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중국의 역사다. 중국 문명은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일어난 초기 문명들만큼이나 오래된 문명이다. 게다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일어난 문명들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거나 다른 문화와 제국에 잠식되었지만, 현대 중국의 토대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3천 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나운 용과 거대한 판다의 땅은 인류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생존자이며, 지금은 어느 문명보다도 이 문명에 인류의 미래가, 더 나아가 지구라는 행성 자체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강대국을 그렇게 다르고 그렇게 특별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나라는 어떻게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2. 벼의 재배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에 북쪽의 황허 강 유역과 남쪽의 거대한 양쯔 강 유역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독특한 문명이 나타났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계이고 세계에서 나일강과 아마존 강, 미시시피 강 다음으로 가장 긴 강인 양쯔 강 유역에서는 아마 기원전 7000년경부터 사냥과 채집을 하며 떠돌던 부족들이 벼를 재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티베트의 빙하 지대에서 발원한 이 거대한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약 4천 마일을 흐른 뒤에 동지나해로 흙탕물을 쏟아낸다. 오늘날에는 강이 혼잡할 정도로 배가 많이 다니고, 강바닥을 준설하는 통에 강에서 사는 동물 가운데 가장 희귀한 종 일부가 멸종 위기에 있다. 그 중에서도 양쯔 강 돌고래는 2006년에 멸종된 것으로 공식 선언되었고, 쇠돌고래는 현재 1400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기원전 3000년경에는 양쯔 강과 700개에 이르는 지류가 자주 범람해 양쯔 강 유역은 을 재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놀라운 정도로 생산적이고 영양분도 많은 식량인 쌀은 지구상 어떤 농작물보다도 크고 밀집된 인구를 먹여 살리기에 좋은 농작물로 손꼽힌다. 오늘날 인도 중국은 일찍부터 쌀을 생산한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인간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쌀은 영양가도 높지만 해충에도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논에 물이 차면 물을 좋아하는 개구리와 뱀 같은 동물이 살기 좋은 곳이 되고, 개구리와 뱀은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를 잡아먹는다. 물이 덮여 있으면 제멋대로 잡초가 자라는 것도 막고 영양분이 자유롭게 흘러다녀 땅이 새로워진다.

벼농사를 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벼를 하나하나 심어야 하고, 관개에 대한 지식이 있어 해마다 적당한 때에 물이 차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고맙게도 물소처럼 그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노동력을 자연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어 중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동물의 힘을 이용해 논을 감고 흙을 고르고 물을 댈 줄 알았다.

3. 양잠의 시작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까지 황허 강 유역에서 살았던 양샤오 사람들은 중국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아 오랫동안 비밀에 붙여졌던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로 추정되고 있다. 

비단은 아주 보기 드문  천연물건이다. 비단은 빛을 반사해 매우 아름다운 광택이 나고, 무엇보다도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비단은 벌레가 애벌레를 보호하려고 감싸는 실로 만들어진다. 애벌레는 알에서 깨면 서서히 실을 갉아먹으며 고치에서 나와 마침내 나비나 나방이 된다.

전설에 따르면 비단의 신비로운 특성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황제의 아내 누조였다. 황제는 기원전 2697년부터 기원전 2598년까지 중국을 다스린 군주다. 누조는 산책을 나갔다가 황제의 뽕나무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알고보니 애벌레 수천 마리가 기어다니며 뽕잎을 갉아먹어 뽕나무가 큰 손상을 입은 것이었다.

누조는 고치를 몇 개 주워 와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러다 우연히 고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물에 빠졌는데, 고치가 풀리면서 가는 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조는 이 가늘고 강한 끈을 손가락에 감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황제를 설득해 뽕나무를 숲을 만들도록 했고, 결국 물레로 실을 자아 광택이 나는 값비싼 천을 짜는 법을 알아냈다.

지금은 누에라고 하는 애벌레를 기르는 것을 누에치기 또는 양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국에 엄청난 부와 번영을 가져왔다. 중국 농부들과 상인들은 3천 년 동안이나 우아하게 빛나는 비단에 반한 다른 문명들과의 교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새틴과 나일론, 아크릴 섬유같은 인조견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4. 비단의 전래

비단은 훗날 비단길로 알려진 일련의 육상 교역로가 발달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로마 제국 때에는 지중해 사람들의 비단 수요가 엄청나게 많았다. 비단은 감촉이 좋고 부드러운 광택이 나 고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사치품 가운데 하나였다.

엄청나게 많은 금이 비단길을 통해 제국에서 흘러나갔고, 중국은 아주 부자가 되었다. 로마 사람들은 비단을 어떻게 만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로마의 유명한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비단이 어떤 신비한 나무에서 자란다고 생각했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서기 550년경에야 올바른 종류의 애벌레를 기르고 뽕잎을 먹여 비단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그때도 비잔티움 시대 그리스 사람들은 콘스탄티노플안에 있는 황궁에서만 비단을 생산했을 정도로 비밀을 소중히 지켰다. 비단의 신비함을 유지해 높은 값을 유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리스 역사가 카이사레아의 프로코피우스에 따르면, 서기 550년경에 수도사 둘이 중앙 아시아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면서 누에 알을 몰래 대나무 통에 숨겨 가지고 들어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바친 뒤에야 비단을 만드는 방법이 서방에 알려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것은 유럽에서 소중히 지키는 비잔티움 시대의 비밀이 되었으나,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 시칠리아의 노르만족이 당시 중요한 비단 생산 중심지였던 코린트를 공격한 뒤 시칠리아에 전해졌다. 훗날 1204년에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했을 때 비단 기술자들은 이탈리아와 아비뇽에 정착했다.

5. 철기의 사용

오랫동안 지속된 중국의 번영에 세 번째 주춧돌이 된 것은 뛰어난 철 주조 기술이다. 터키 중앙의 히타이트 사람들은 철광석을 제련하는 방법을 완전히 습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이 기원전 1400년경에 처음 대장장이의 모루에 망치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유럽과 지중해의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구의 암석인 광석에서 발견되는 철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은 양쯔 강 유역 우라는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철을 주조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은 유럽에서는 1500년 동안이나 그것에 필적하는 것이 없었을 정도로 발전된 것이었다. 

산소가 동물의 삶에 필요한 만큼이나 철은 현대 인류 문명에 없어서는 안될 지구의 선물이다. 철은 오늘날 사용되는 모든 금속의 약 95퍼센트가 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철은 지구에서 네 번째로 흔한 원소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45억 년 전에 일어난 재앙을 떠올려보라. 그때 젊은 행성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해 달이 생겨났다. 이 귀중한 물질이 전 세계에 널리 깊게 흩어져 있는 이유다. 

그렇지만 구리와 달리 철은 순수한 형태로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원소들이 철과 반응하기를 좋아해 철을 추출하려면 노력과 약간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기원전 500년경에 그것을 습득해 세계 최초의 용광로를 만들었다.

철광석을 섭씨 약 1450도까지 가열하면 철이 녹아 액체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그것을 거푸집에 부어 온갖 형태와 크기의 도구를 만들 수 있고, 식히면 철이 강해지고 단단해진다. 처음 만들어진 철제 도구는 거의 모두 농사에 쓰였다. 

철로 만든 쟁기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단단한 식토도 뚫고 나아가 잡목이 무성한 드넓은 황무지를 수확하기 좋은 논으로 만들 수 있었다. 식량이 많아지니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고, 사람이 많아지니 영양 상태도 좋고 쉽게 공급되는 상비군을 만들어 강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6. 양쯔 강 문명

중국 남부의 양쯔 강 유역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쌀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철이 처음 나온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철을 제련하는 기술과 지식은 빠르게 북쪽으로 퍼졌다.

베이징에서 가까운 허베이 성에서 발견된 기원전 300년경의 거대한 무덤에는 병사 여럿이 무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장비와 함께 묻혀 있었다. 이것들은 거의 모두 주철로 만들어졌고,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몇 가지 장식뿐이었다. 한 왕조때는 중국의 금속 세공 기술이 크게 발달해 서양에서는 18세기까지 그것을 따라갈 수 없었다.

중국 정부는 허난 성에 일련의 거대한 용광로를 만들었고, 이것들은 저마다 하루에 수톤의 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중국이 여러 종류의 철을 합쳐 한층 단단한 합금철인 강철을 만드는 법을 알아낸 것도 이 즈음이다.

철과 쌀이 처음에는 중국 남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비단을 짠 북부 사람들도 뒤처지지 않았다. 중앙집권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통합하고 정복해 지역 전체를 하나의 문명으로 결합하는 추진력을 발휘한 것은 북부 사람들이었다.

쌀과 비단, 철식량과 부, 전쟁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자연의 세계를 활용해 하나의 강력한 문명을 낳는 자석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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