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을 뒤바꾼 세 가지

때로는 지구의 자연 체계가 게임할 때 카드 뒤섞듯이 인간 집단들을 뒤섞었고, 때로는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동물이나 농작물, 숲을 이용해 집과 농장, 논밭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자연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볼 때만 이해가 된다.

1. 혼돈의 시대

기원전 두 번째 천 년이 시작될 즈음부터, 그러니까 약 4천 년 전부터 새로운 문명의 영향권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 아주 긴장되고 폭력적이며 공격적인 삶으로 변했다. 때로는 그 원인이 자연적인 것이라 피할 수 없었다. 

2억5200만년 전에 페름기의 대멸종을 초래한 것으로 생각되는 초대형 화산 폭발 같은 지구적 재앙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그러나 기원전 1627년경에 지중해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발 지수 7의 화산 폭발 같은 지역적 재난은 훨씬 자주 일어난다. 이런 화산 폭발은 근방에 사는 여러 초기 인류 문명의 기본 구조를 완전히 파괴했다.

중요한 것은 화산 폭발의 규모만이 아니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난 위치도 중요했다. 지중해 주변에 세계에서 가장 일찍 형성된 인간 문명의 일부가 모여 있어, 그런 큰 폭발의 영향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높이가 150킬로키터는 되었을 일련의 거대한 쓰나미가 바다를 가르며 돌진해 크레타 섬에서 미노아 사람들이 이룬 교역의 제국을 강타했을 것이다.

이푸웨르 파피루스라고 하는 고대의 두루마리는 이즈음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이 시대에 이집트에 들이닥친 혼돈의 시대가 운문으로 그려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엄청난 화산 폭발의 여파로 이 나라가 ‘도자기 만들 때 쓰는 돌림판처럼’ 어지러운 혼돈의 늪에 빠져, 도시가 파괴되고 정부가 무너지고 주변의 모든 땅이 ‘텅 빈 불모지’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2. 유목민

테라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인더스 강 유역도 자연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그 즈음 히말라야 산맥에서 일련의 큰 지진이 일어났고, 아마 그래서 진원지에서 가까운 인더스 강 유역의 수계에 교란이 일어나 물줄기가 더 동쪽으로, 오늘날 갠지스 강이 흐르는 쪽으로 발향을 바꾸었을 것이다.

자연의 선물인 자유롭게 흐르는 민물이 사라지자 이 발달된 문명은 바짝 말라버린 강바닥 말고는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주 멋진 춤추는 소녀 상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거의 그들이 한때 의지했던 물줄기 만큼이나 빠르게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모든 문명이 느닷없이 질서를 파괴하는 자연의 변덕에 취약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일 강이나 인더스 강 같은 강 옆이나 미노아 사람들처럼 바다 옆에 정착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유목민의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이 사람들은 강 같이 고정된 물의 원천에 의존하지 않았고, 바다가 휩쓸어버릴 수도 있는 곳에 정착해 공동체를 이루어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늘 사냥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축으로 길들인 소와 돼지, 양, 염소 같은 동물을 데리고 다니며 이것들로부터 안정적으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얻고 이것들을 운송 수단으로 썼다는 점이다. 이들 유목민은 교역자로서 고대 세계의 육로 운송 체계의 근간이 되었다.

3. 청동제 무기

시간이 흐르자 이들의 떠도는 생활방식은 이들이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해,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의 흐름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변화는 이들이 말의 힘을 이용할 줄 알게 되어 훨씬 빨리 이동하고 훨씬 많은 짐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주석과 구리를 녹여 청동을 만들 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청동이 전쟁 무기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도 발견했다.

청동기 시대는 곳에 따라 시작된 시기가 다르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아마 기원전 4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장인들이 합금을 이용해 인더스 문명의 춤추는 소녀 상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청동으로 갑옷과 방패, 도끼와 칼, 창 같은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목민들은 구리와 주석 같은 귀한 원료를 서쪽과 남쪽으로, 중동으로, 인도로 실어 날랐다. 그러나 이 교역자들이 청동 무기를 만드는 전문가가 되자 교역로를 따라 형성된 공동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많은 정주민들을 침략해 정복하고 종속시키는 일이 식은 죽 먹기처럼 간단한 일이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무기와 더불어 야생 동물을 정복해 유목민의 장거리 이동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필요도 있었다. 남자들은 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일에 훨씬 잘 맞았다. 그런 힘쎈 동물을 길들이려면 무엇보다도 기운과 토지, 폭력이 필요했다. 유목민들은 이 무리지어 사는 야생말을 길들이고 사육하고 훈련시켜 인간의 노예로 만들었다.

영국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가 1920년대에 발견한 ‘우르의 깃발‘이라는 아름다운 채색 상자에 따르면, 마차는 기원전 2600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상자에는 ‘전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수메르 병사들이 창을 들고 말이나 소, 또는 황소로 보이는 것이 끄는 사륜 전차를 뒤따라간다.

4. 남성 지배적 사회

러시아 스텝 지역의 유목민 교역자들은 아마 최초로 길들인 말바퀴 달린 마차, 청동 무기를 두루 갖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또 통 바퀴가 아닌 살이 있는 바퀴를 씀으로써 말이 끌 수 있는 짐의 무게도 늘릴 줄 알게 되어, 전차가 더욱 가벼워지고 싸울 때 기동성도 높아졌다.

여러 가지 증거는 이들이 말에 아주 많이 의존했음을 말해준다. 한 예로 스텝 지역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에 묻힌 사람들의 무덤에서 뼈로 만든 재갈과 말의 유해가 함께 발견되었다. 이들의 생활방식은 말에 대한 통제와 금속 무기 제조에 기반을 둔 훨씬 공격적이고 남성 지배적인 사회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퍼뜨렸다.

유럽 전역에서 농사를 짓던 신석기 시대 초기 사람들의 무덤이 점차 비옥한 저지대에 있는 공동 무덤에서 요새화된 지역에 있는 개인 무덤으로 변했고, 이런 무덤에서는 한때 위풍당당했던 우두머리들의 유해가 아주 멋진 무기와 전차, 갑옷과 함께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속도와 높이, 화력 덕분에 길들인 말이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보다 군사적으로 엄청나게 유리해졌다. 말은 당시 알려진 어떤 것보다도 다섯 배 이상 빠른 운송 수단을 제공했다. 이제 말을 타는 사람들은 정찰과 빠른 의사소통, 기습을 할 수 있었고, 테러와 협박, 정복,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5. 전사 종족

기원전 2000년경부터 유목민의 문명뿐만 아니라 정주민의 문명도 군사화하기 시작했다. 히타이트와 후르리, 미케네 사람들의 제국이 모두 청동 무기와 기백이 넘치는 말, 무거운 짐을 실을 전차 위에 구축되었다. 이들은 아마 원래 흑해의 북쪽과 동쪽, 서쪽에 펼쳐진 스텝 지역에서 살았을 것이다.

기원전 1800년경에 나타난 히타이트 사람들은 터키 중앙에 있는 하루사에 수도를 세웠다. 이 전사 종족은 전쟁에서 말과 전차를 쓰는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이들의 수준 높은 야금술은 철을 채굴해 녹이는 방법을 발견해 더욱 다양하고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었다. 기원전 1400년에는 이들이 레바논과 시리아, 가나안은 물론 저 멀리 이집트와의 국경 지대까지 모두 정복했을 정도로 아주 막강해졌다.

말을 훈련시키는 기술은 대개 대대로 구전되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으로 알려진 훈련 교본은 기원전 1350년경의 것이다. 이것은 키쿨리라는 히타이트 말 조련사가 썼고 전차에 쓰는 말을 훈련시키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설명된 일련의 복잡한 훈련 방법 중에는 말의 지구력과 민첩성을 높이려고 인터빌 트레이닝을 이용하는 현대 조련 기법과 비슷한 것도 많았다.

후르리 사람들도 이웃인 히타이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야생말을 처음 길들인 북쪽에서 왔다. 오늘날의 현대 쿠르드인의 조상인 이 사람들은 기원전 두 번째 천 년 동안 중동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다. 이들의 전사 사회는 신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낳았다.

이제는 농사를 관장하는 어머니 여신인 달의 여신과 풍요의 여신 대신 대신 남성 신인 테수프가 가장 강력한 신이 되었다. 테수프날씨를 관장했다. 그의 아내 헤파을 상징했다. 역사가들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많은 부분이 원래는 후르리 신들에서 왔고 제우스의 이야기도 테수프의 이야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을 거라고 믿는다.

6. 정복 사회

기원전 1180년경에는 히타이트 사람들과 후르리 사람들 모두 바닷사람들이라고 불렀던 다른 전사 부족 연맹체에게 침략을 당했고 결국 그들에게 정복되었다. 사실 바퀴와 말, 청동의 고약한 결합으로 기원전 1800년경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지중해 연안의 유럽과 중동은 혼란에 거듭 휩싸였다. 말을 타고 청동 무기와 철제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와 기회만 있으면 침략하고 정복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런 기회가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을 휩쓸었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때문에 오기도 했다. 기원전 1600년경에는 역시 원래는 흑해 연안에 살았던 미케네 사람들이 그리스 남부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은 미케네에 멋진 수도를 세웠고, 미케네에서는 단검과 가면, 갑옷, 보석으로 장식된 무기가 들어 있는 벌집형 무덤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에는 미케네 사람들이 크레타 섬에 이르러 폐허가 된 크노소스를 비롯해 미노아 문명의 버려진 도시들을 정복했다. 미케네 미술과 도자기에서는 미노아 문명의 영향이 많이 묻어나지만, 두 문화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두 문화의 벽화는 자연계에 대한 태도에서 그 차이를 드러낸다. 미노아 문명의 그림에서는 솟구치는 돌고래 같은 동물을 보고 즐거워하는 장면을 불 수 있지만, 미케네 문명의 예술작품에서는 동물이 갓 잡은 사냥감으로서만 찬미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