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발견

글을 쓰는 기술이 어떻게 상인과 통치자, 장인, 농부, 사제가 최초로 인간 문명을 일군, ‘역사’로 알려진 시대를 가져왔을까?

1. 기록의 시작

역사시대와 선사시대의 차이는 한마디로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글을 씀으로써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기록할 수 있었다. 다른 세대에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이른바 ‘기록된 역사’라는 것이 시작되었고, 그 전의 모든 것을 우리는 ‘선사시대‘라고 부른다.

물론 글을 쓰기 전에도 이미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졋다. 때로 글로 써서 남기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정확하게 전달되기 힘들어 환상이나 신화로 둔갑하곤 한다.

이야기가 제대로 분석되고 정확하게 해석되도록 하려면 글로 써서 남겨야 하고, 그래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록된’ 역사는 처음 글을 쓰면서 시작되었고, 그런 일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문명들에서 약 5천 년 전에 일어났다. 

아마 문자가 없었다면 인간의 문명과 제국이 살아남기는커녕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자 덕분에 통치자들은 멀리서도 지워지지 않도록 새긴 칙병과 법, 군령으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2.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는 오늘날의 이라크 중심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멀리 페르시아 만까지 뻗어 있었으며, 페르시아 만에서 인도양과 연결되었다. 수메르는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새로운 욕구가 인위적 세계를 건설하는 쪽으로 확장되어 처음으로 도시와 국가가 나타난 지역들 가운데 하나다. 

수메르는 초기에 정착한 인간 공동체가 살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1만 년 전에는 해수면이 낮았던 지점에서 거의 130미터나 올라가 세계적으로 이 지역의 기후가 습해진 덕분에 지금보다 농작물 기르기가 훨씬 좋았다. 기온이 올라가고 강우량이 줄어 중동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래투성이의 불모지가 되기 시작한 것은 약 5천 년 전부터다.

습한 기후는 겨울에도 비가 와야 하는 밀과 보리, 포도 같은 농작물을 기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이 지역의 산비탈과 산허리에서는 가축으로 길들이기에 딱 좋은 양과 염소, 소 같은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동물들은 식량은 물론, 쟁기와 수레를 끄는 힘으로도 쓰고, 옷과 술.기름 등을 넣는 가죽 주머니, 가죽 제품을 만드는 재료로도 쓸 수 있었다.

고대에 최초로 수메르 도시가 나타난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에 인간이 만든 관개용수로와 배수로, 저수지, 댐 같은 시설을 통해 근처에 있는 땅에 물을 공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람들은 일부러 논밭에 강물이 범람하게 해, 자기들이 인위적으로 선택한 농작물이 풍작을 이루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 수 있었다. 

3. 문명의 발달

중동에서는 수메르 외에도 두 개의 고대 문명이 큰 강 유역에서 발생했다. 하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일 강 유역에서 발생했고, 하나는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 유역에서 발생했다. 

글자는 초기 인간 문명이 얼마나 발달된 문명이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다.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는 장사꾼이었고 또한 일부는 교역을 해도 좋을 만한 것을 만드는 장인이었다는 말이다. 

문자 언어는 식량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익히고 사람들 사이에 일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문명의 전형적 특징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식량을 채집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어떤 사람들은 장인의 솜씨나 장사하는 솜씨를 발휘하는 문명 말이다.

4. 고대 문자의 발견

1845년 페르시아에서 이상하게 생긴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빽빽이 새겨져 있는 석판에 덮인 고대 궁전의 성벽이 발견됐다. 이것은 오래된 낙서 같은 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단순한 왕궁이 아니었다. 몇 차례에 걸친 발굴 끝에 그곳에서 궁전 두 채와 큰 왕실 도서관이 발굴되었고, 알고 보니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니네베라는 고대 도시의 잔해였다. 

도서관은 기원전 627년에 죽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이 지은 것이었다. 위대한 왕이었던 아슈르바니팔은 학자이자 열렬한 수집가였다. 그 시대의 다른 왕들과 달리 아슈르바니팔은 읽고 쓸 줄 알았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레이어드와 그의 팀은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점토판을 무려 2만 점이나 발굴했다. 그 중에는 왕의 명단과 역사, 종교적인 글도 있고, 수학과 천문학 논문, 계약서, 법률 문서, 칙령과 칙서도 있었다. 이것들은 고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했고, 언제 어디서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고 그것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물론 이 귀중한 점토판으로부터 유익한 정보를 얻으려면 먼저 점토판에 있는 텍스트를 읽는 법을 알아내야 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레이어드와 그의 팀이 니네베에서 점토판을 발굴하고 있을 즈음에 페르시아에서 복무하던 한 영국군 장교가 또 하나의 놀라운 발견을 했다. 설형문자 읽는 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발견이었다.

5. 고대 문자의 해석

현재 영국박물관에 있는 로제타석 1799년에 이집트에서 나폴레옹 군대가 발견한 유명한 돌이다. 여기에는 같은 구절이 세 가지 언어로 쓰여 있는데, 그 가운데 둘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이고 하나는 고대 그리스어다. 

1822년에 프랑스 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로제타석에 새겨진 문자를 해독했고, 이로써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헨리 롤린슨이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 지대에 있는 자그로스 산맥의 작은 산에서 발견한 것도 그것들 못지않게 놀라운 것이었다. 이라크의 바빌론에서 뻗어나온 고대의 길을 따라 늘어선 절벽 위에서 그는 바위에 새겨진 일련의 조각상을 발견했고, 그 조각상마다 밑에는 어떤 구절이 쓰여 있었다.

베히스툰 비문이라고 하는 이 조각들은 기원전 522년부터 485년까지 이 지역을 다스린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로제타석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도 세 가지 언어로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100미터 높이의 절벽에 있어 롤린슨의 발견 전에는 아무도 절벽에 새겨진 것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1835년에 롤린슨은 절벽에 올라가 탁본을 떴다. 그는 텍스트의 첫머리는 페르시아 왕의 명단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있는 명단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것을 단서로 삼아 롤린슨은 고대 설형문자로 쓴 글을 읽는 법을 알아냈고, 그의 노력 덕분에 그후 전문가들은 레이어드가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귀중한 점토판에 쓰여 있는 것들도 대부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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