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의 시대

어떻게 인간의 종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 한 종만 마지막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아 그전까지 사람이 살지 않던 땅에 이주해 살며 말하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형태의 깃 달린 무기로 사냥하는 것을 배웠을까?

1. 현생인류의 조상

우리는 이제 호모 사피엔스, 즉 현대의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 아니었다. 두 종이 수천 년 동안 동시대를 살아 두 종 사이의 짝 짓기도 있었겠지만, 최근의 유전학적 증거는 그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붉은 머리카락과 주근깨, 창백한 피부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특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견된 25개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거의 50만 년에 걸쳐서 존재했고, 이것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면 호모 에렉투스에서 오늘날의 우리까지 오는 데 진화의 발걸음이 몇 걸음밖에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에티오피아 남부에서 발견되었다 1967년에 오모 강바닥에 쌓인 진흙 속 깊이 파묻혀 있던 인간의 두개골 두 개가 발견되었다. 이것들은 최근에 연대를 다시 측정한 결과 지금은 약 19만5천 년 전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오모 1‘과 ‘오모 2‘로 불리는 두 두개골은 꼭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처럼 보인다. 현생인류의 두개골보다 조금 큰 것을 제외하면 현생인류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이것들은 얼굴이 납작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왓지만, 그 전의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눈 위고 튀어나온 눈썹뼈는 없었다.

2. 개체의 감소

1997년에도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의 두개골이 에티오피아의 헤르토라는 마을에서 세 개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석기도 640점 이상 발견되어, 정교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이 석기들은 아마 근처에 있는 아와시 강 옆에 있던 깊지 않은 호수에서 살던 하마와 악어, 메기를 잡아 살을 발라내는데 쓰였을 것이다.

유전학적 연구는 오늘날 살아 있는 인류는 모두 이즈음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한 종의 인간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로 유전적 변이가 거의 없다. 포유류에 속한 대부분의 종들에 비해 그 차이가 아주 작다. 

그렇게 유전적 변이가 작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언젠가 우리 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고 그들이 서로 아주 비슷한 유전자 정보를 지니고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미치자 전문가들은 호모사피엔스가 자신의 역사 초기에 개체수가 거의 치명적일 정도로 급격히 줄었을 거라는 생각에 들어맞는 ‘사건’을 찾는 또 하나의 사냥에 나섰다.

하나는 약 7만5천 년 전에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에 잇는 토바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 지수 8의 대폭발이다. 전문가들은 이때 거대한 열점에서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분출해, 1981년에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세인트헬렌스 산에서 일어난 화산 분출보다 3천 배나 많은 에너지를 분출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면 대기가 완전히 먼지로 뒤덮여 햇빛이 몇 개월 동안, 아니 어쩌면 몇 년 동안이나 차단되어 지구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을 것이고, 어쩌면 그 때문에 빙하기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질병의 발생으로 인구의 많은 부분을 쓸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아프리카의 조상들에서 온 호모 사피엔스는 조상들을 본떠 자기들도 세계를 돌아다녔고, 국 다른 종의 인간을 모두 대체했다

3. 대규모 이주

지금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인종적으로 다양한 현생인류의 수많은 유전자를 추적해 이들의 조상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를 밝히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통지리학에서는 작은 유전적 변이를 통해서도 언제 어디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아마 처음에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이주를 한 것은 약 13만 년전에서 9만 년 전 사이에 빙하기 중에도 따듯한 간빙기가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약 7만 년 전부터 날씨가 추워져 빙하가 높은 산꼭대기를 덮으면서 아프리카 북부가 남부와 단절되고 아프리카 북서부와 북동부가 단절되었다. 

다윈이 발견했듯이 종이 물리적으로 단절되면 작은 변이들이 각각의 유전자 풀에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해 종이 다양해진다. 인류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네 인종 집단으로 분리되었다.

약 6만 년 전부터 이 네 무리의 인간들은 아프리카에서 따로따로 이주해 저마다 세계를 가로지르며 자기들의 작은 유전적 차이를 수출했다. 어떤 호모 사피엔스들은 아시아를 휩쓸며 마지막 남은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다

어떤 호모 사피엔스들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인도와 중국에 도달했다. 그들은 뗏목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약 4만 년 전부터 수백만 년 동안 유대류 포유동물의 영역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는 처음으로 노를 저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또 하나의 인간 사냥터가 되었다.

4. 도구의 발달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해수면이 역사에 남을 정도로 낮았을 때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왔다. 그들은 숲에서 500~800명 정도가 부족을 이루며 살며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발전시키고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과 도자기, 도구로 만들어냈다.

놀랍게도 그들은 250여 년 전에 최초의 유럽 탐험가들이 손에 총을 들고 와 이 땅을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할 때까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살았다.

처음 유럽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들은 약 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걸어갔다가 중동을 거쳐 북쪽으로 왔다. 이 사람들을 때로 크로마뇽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1868년에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 있는 크로마뇽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유골이 발견된 것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생활양식과 과학기술, 문화에서 아주 큰 변화를 가져왔고, 세계 최초로 특수하게 날아가도록 설계된 도 만들어냈다. 활과 화살은 아마 이동 중에 어딘가에서 발명했을 것이다.

어쩌면 북아프리카나 중동에서 발명했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두 곳에 초목이 무성해 사냥감과 커다란 야생 동물이 가득했고,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어 쓴 몽둥이로 가까운 거리에서 죽이기보다는 먼 거리에서 죽이는 것이 훨씬 쉽고 안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부터 인간의 도구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처음으로 뼈와 엄니, 나뭇가지 같은 뿔이 바느질할 때 스는 바늘과 동물의 기름을 태워서 불을 밝히는 숟가락처럼 생긴 등잔 같은 유용한 가재도구를 만드는 데 쓰였을 뿐 아니라 장식을 만드는 데도 쓰였다.

크로마뇽인의 무덤에서는 목걸이와 목걸이 장식의 형태로 보석이 묻혀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최초의 질그릇 항아리도 이 시기의 것이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세계 최초의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1908년에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풍요의 여신 상으로, 약 2만4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5. 인류의 이동

그때는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약 2만2천 년 전에 마지막으로 북극에서 거대한 빙상이 내려왔고, 이것은 1만2천 년 뒤에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이 시기에 크로마뇽인은 한층 창백한 피부를 드러내 그러한 기후 변화에 적응했다. 흰 피부는 햇빛이 약한 빙하기에도 뼈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타민 D를 충분히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크로마뇽인은 약 2만 년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이들은 약 1만 년 전에 프랑스에서 걸어서 영국 해협을 건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은 뒤에야 그곳에 물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최초로 영국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최초로 영국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은 그 전에도 일곱 번이나 영국 제도로 이주해서 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약 70만 년 전에 호모에렉투스가 처음 그런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아마 주기적으로 오늘날의 런던까지 얼음으로 뒤덮였던 빙하기의 혹독한 기후 조건 탓이었을 것이다. 빙하기에는 런던처럼 남쪽에 있는 지역에서도 추위가 극심해 어떤 유형의 인간도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6. 신세계의 발견

약 1만5천 년 전에도 지구의 많은 물이 거대한 빙하에 갇혀 해수면이 낮아졌다. 베링지아라는 폴란드만 한 거대한 육교가 지금은 너비 95킬로미터로 펼쳐져 있는 베링 해협을 가로질러 러시아의 동쪽 끝과 알래스카를 연결했을 정도다.

따라서 그때는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아마 그때까지는 북아메리카에 사람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수천 년 전에 남아시아에서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태평양에 있는 섬들을 거쳐 북아메리카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남북 아메리카는 인간이 이주해 살 수 있는 마지막 거대한 대륙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그것을 가리켜 ‘신세계‘라고 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다. 아시아를 가로질러서 가는 동안 사람들은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큰 동물의 뒤를 따르기도 하고 이동하면서 사냥도 하고 들쑥날쑥한 자연의 기후 변화도 최대한 활용했다

북아메리카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파나마라는 거대한 두 대륙을 잇는 육교를 통해서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은 날씨가 훨씬 따뜻해 초목과 사냥감이 풍부했다.

석기 시대 사람들이 지구의 이 지역에 다다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 다다랐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많은 야생 생물이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자연의 생태계 가운데 소수는 아직도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이제 인간이 지구 전체를 둘러쌀 정도로 널리 퍼지면서 세계의 생물 가운데 많은 것이 갈수록 확대되는 인간의 영향력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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