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브리아기 생물화석

아노말로카리스의 화석은 찰스 월컷이 버저스 셰일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 바다 생물은 길이가 1미터에 이르렀고, 먹이를 잡아먹을 때 쓰는 앞다리가 두 개 있었다.

1. 독특한 생물 화석

화석들 중에는 이상하게 생긴 아노말로카리스가 있었다. 이것은 당시 가장 큰 바다 사냥꾼 가운데 하나였고, 길이가 1미터까지 자랄 수 있었다. 팔 같은 것이 한 쌍 있어 먹이를 잡으면 도망가지 못하도록 움켜쥐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이상하게 생긴 생물의 화석이 세 가지 생물이 합쳐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는 해면동물이고 앞다리는 새우, 둥근 입은 원시 해파리라고 생각했다.

할루시제니아라는 독특한 생물도 있었다. 이 이상한 벌레같이 생긴 것도 화석 사냥꾼과 과학자들이 머리를 긁적이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이것이 죽마처럼 생긴 다리로 걷고 등에 부드러운 촉수가 늘어서 있어 이것으로 덫을 놓아 지나가는 먹이를 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곳,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에서 발견된 비슷한 화석들 덕분에 화석 연구자들이 이제는 자기들이 그것을 거꾸로 보았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은 쌍으로 난 부드러운 촉수 같은 다리로 걸었고 등에 난 가시 같은 것들은 잡아먹히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일종의 방탄복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공상과학소설가도 오파비니아 같은 괴물은 생각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 헤엄치는 보석은 왕방울처럼 툭 튀어나온 눈이 다섯 개 달렸고, 헤엄칠 때 쓰는 부채꼴 꼬리와 먹이를 잡아먹는 긴 앞다리가 있다. 다른 포식자들보다 작아 길이는 약 4센티미터밖에 안 되었지만, 오늘날 살아 있는 생물 가운데는 이것의 먼 친척처럼 보이는 것이 없다.

그 시기에 가장 흔한 동물 가운데 하나였고 버저스 셰일에서도 가장 흔하게 발굴된 화석은 삼엽충이다. 이 큰 쥐며느리처럼 생긴 절지동물은 전 세계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몸이 두껍고 딱딱한 껍질에 덮여 있어, 화석이 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엽충은 아마 지구 역사상 최초로 볼 수 있는 생물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파리처럼 수백개의 방으로 나뉜 눈이 있어, 바다 밑 세상을 일종의 모자이크처럼 볼 수 있었다.

2. 하나의 조상

지구의 생물이 실제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려면 생물 종이 저마다 언제 살다 죽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들을 연대순으로 이어 맞출 수 있도록 말이다. 한 사람의 천재성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바로 찰스 다윈모든 생물은 지금도 여전히 펼쳐지고 있는 순서에 따라 진화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윈의 책 <종의 기원>은 최초로 모든 생물이 원래는 하나의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현대 과학자들이 이제 모든 생물의 공통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 즉 끝까지 추적했을 때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공통의 조상인 것은 약 30억~50억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부터 생물은 수없이 많고 다양한 형태의 종으로 진화했다.

다윈이 이것을 밝혀낸 것은 화석 기록을 보면 새로운 생물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의 결론은 모든 생물은 서로 관련이 있지만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종들만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론은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화석을 여러 집단으로 나누어 대략 연대순으로 나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다윈의 이론은 인간도 원숭이처럼 인간보다 단순한 생물의 자손이고,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쥐와 파충류, 어류의 자손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지구에 생물이 출현한 초기에 발견된 박테리아의 자손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을 낳았다. 그는 화석을 연구해 이 모든것을 알아냈다.

 3. 자연 선택

찰스 다윈은 아주 집요한 형사 같은 과학자였다. 생명의 기원과 의미를 발견하려고 세계 곳곳으로 계속 길고 험난한 모험을 다녔다. 1831년 다윈은 작은 영국 해군 측량선 HMS 비글호를 타고 탐험에 나섰다. 이 배의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는 최초로 남아메리카 해안 지대의 지도를 만드는 일을 맡았고, 다윈은 선장의 동행자로 갔다. 5년 동안 항해하며 다윈은 화석을 수천 점 수집했고, 멀미가 나 죽도록 고생했으며, 칠레에서는 지진까지 겪었다.

다윈은 늘 조사한 것을 빠짐없이 자세히 기록했다. 바다 위로 높이 솟아오른 육지에서 바다조개가 널려 있는 드넓은 계단식 들판을 보았을 때는, 오랜 시간에 걸쳐 육지가 바다 위로 밀려 올라갔다는 것을 알았다. 칠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는 섬마다 특별한 종류의 흉내지빠귀가 있는 것에 주목했다.

코끼리거북 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도 발견했다. 이런 관찰을 통해 그는 이 생물들이 모두 하나의 조상에서 유래했지만 그것들이 사는 섬의 특수한 환경에 조금씩 적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멸종된 종들의 화석 기록도 다윈이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석을 연구하고 그것을 오늘날 살아 있는 생물과 비교함으로써 다윈은 종들이 저마다 그가 ‘자연선택‘이라고 부른 원리에 따라 환경에 적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세대가 지나는 동안 당시 지구에서 살 준비가 가장 잘된 생물들은 살아남아 번성해 다른 생물을 지배했고, 가장 준비가 안 된 생물들은 죽어 결국 멸종되었다.

4. 동물의 자손

많은 사람이 다윈의 이론이 뜻하는 바에 분노했다. 인간이 동물의 자손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원숭이의 자손이라는 말은 인류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생물과 다르고 어떤 생물보다도 우수하다는, 당시 널리 받아들여졌던 생각을 위협했다. 인간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멸종될 운명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5년 동안 항해하며 다윈은 인간의 만행을 적어도 두 번은 목격했다. 한 번은 남아메리카 노예들이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환경에서 사는 것을 보았을 때이고, 한 번은 유럽 이주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원주민을 학대하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그런 경험은 다윈이 암석에 있는 화석이 증언해주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은 영락없이 동물의 자손이었다. 다윈은 그의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인 <인간의 유래>에서 인류는 ‘고귀한’ 품성도 지니고 있지만 ‘신체 구조에는 아직도 인간의 비천한 기원을 말해주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다윈은 인간이 동물의 자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말한 것인가? 

만일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천국이나 지옥에 갈 수 없는데 구원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윈의 이론이 기독교에 대한 조롱이었다. 그래서 다윈은 자기 생각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스러워 거의 30년 동안이나 자신의 이론을 발표하려고 하지 않았다.

5. 지구 생물의 변화

오늘날에는 과학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생물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말해주는 다윈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암석과 화석 연대 측정법을 발견했다. 우라늄과 칼륨, 탄소14 같은 어떤 유형의 광물들은 자연의 시계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광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런 물질에서 저런 물질로 바뀐다. 방사성 붕괴로 알려진 과정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붕괴가 일어나는 속도를 알아냄으로써 이런 광물을 이용해 그것들이 발견된 암석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연대 측정법을 이용해 지구의 생물이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 일어난 약 5억3천만 년 전부터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또 지질주상도라는 과거의 지도도 만들었으며, 이것은 여러시대로 나뉘어 있다.

버저스 셰일과 화석 기록은 동물에 처음 껍질이 생긴 고생대에 최초로 나타난다.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시대들은 다시 여러 시기로 나누어진다. 고생대는 약 5억4200만 년 전에 캄브리아기와 함게 시작되어 약 2억9100만 년 뒤인 페름기와 함께 끝난다. 이제 곧 보겠지만, 페름기는 피날레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피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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